안녕하세요, 수아 편집장님 그리고 소현, 서영, 별 부장님. 곧 차기 편집장으로 부임할 이정민 기자입니다. 벌써 1년 반의 시간이 흘러 어느새 마지막 발행을 앞둔 지금, 떠나지 말라는 말이 목구멍에 아른거립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편집일마다 부장님들이 나누시던 실 없는 농담들을 들으며 몰래 웃던 그 모든 시간들이 그리울 것 같습니다. 퇴임을 축하드리며 앞으로 펼쳐나갈 모든 길을 응원하겠습니다!
지난 마음가짐을 돌아보며
“왜요? 편집장이 압박을 주나요?” 지도교수 상담 중 학보사 활동이 힘들다고 말하자 들은 말이었다. 당시 교수님께서는 내가 편집장임을 모르셨기에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막상 그런 말을 듣자 묘한 감정이 들었다. 퇴임을 앞둔 지금 그간의 회포를 풀자니 다시금 그 문장이 떠오른다.
외람된 말이나 편집장 취임 이전의 나는 학보사의 영향력이 현저히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기자들은 항상 과로로 고생하는 반면 배포대에는 먼지 쌓인 신문이 수두룩했다. 그렇기에 괜히 욕심이 생겨 다짐했다. 덕성여대신문사의 의미를 되살려보자고. 어쩌면 나는 ‘편집장’이라는 직책 하에 스스로 압박을 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노력은 언젠가 돌아온다는 말이 있던가. 가지각색의 역경이 찾아왔으나 처음 다짐했던 바처럼 정말 의미 있는 일을 해냈다. 6년 동안 진행하지 못했던 기자동우회와 작가와의 대화를 재개했으며 169개의 기사, 지면 100장에 걸쳐 11개의 신문을 성황리에 발행했다. 특히 지난해 겨울, 학우들의 시국선언을 담은 제758호가 소진돼 배포대를 다시 채워야 했던 순간은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물론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 글을 빌어 항상 나를 응원해 준 가족과 전공 교수님, 친구들, 타대학 편집장들과 선배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기간에 상관없이 함께 고생한 덕성여대신문사 일원 모두에게도 진심으로 고맙다. 좋은 추억들과 사람들이 있었기에 직책에 조금이나마 익숙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끝내 지면을 통해 퇴임사를 전할 수 있어 기쁘다.
비록 이 호를 기점으로 더 이상 내 이름 뒤에 편집장이 붙을 일은 없겠으나 후회란 없다. 내가 한 일이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뒤를 이을 후배 기자들에게 격려의 한마디를 전하고 싶다. 당장은 막막할지 몰라도 포기하지 말길. 우리가 쓴 문장은 분명 누군가의 마음에 닿아 있을 것이라고.
힘든 과정은 힘들게 버텨야 한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처음 학보사 기자로 일할 때는 화가 날 정도로 시간이 느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와 돌아보니 2년이라는 긴 시간이 벌써 지났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그 상대적인 차이를 곱씹어 보니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흘러간다.
학보사 기자로 보낸 시간에 마침표를 찍는다고 생각하면 조금 아쉽다. 그리고 그 아쉬움의 천배쯤 신난다. 학보사 기자 생활은 그만큼 힘들었다.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비효율적인 일에 강의 사이 빈 시간을 빼앗기고 종강 후 주어지는 여유까지 반납해야 했다. 가끔 내 생각과 맞지 않는 일을 해야 할 때면 도망가고 싶었다. 괴로움은 시간을 느리게 만들었다. 그 느린 시간을 감내하고 임기를 모두 마칠 수 있었던 방법에 묘수는 없었다. 어쩔 도리 없이 버텼다.
그동안 학보사 기자로서 인터뷰했던 대단한 사람들이 하나같이 강조한 말이 있다. ‘힘든 과정은 힘들게 버텨야 한다’는 말이다. 가끔은 포기하는 것이 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다. 포기가 잘못된 선택은 아니다. 다만 본인이 선택한 길 위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경험만이 줄 수 있는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학보사 생활을 통해 힘겨운 과정을 인내하는 힘이 진정한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았다.
느리고 섬세하게 시간을 들여 쌓은 성이 단단한 것처럼 더디게 흐른 시간은 단단함을 만든다. 지난 2년은 하나의 가치로 축약돼 빨리 감기 하듯이 훑을 수 있게 됐다. 느리다고 느껴질 만큼 쉽지 않았던 시간을 버틴 나를 칭찬하고 싶다.
함께여서 완성된 공간
무언가를 시작하면 끝을 맺는 건 당연하다. 그리고 그 끝을 잘 맺는 일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부끄럽지만 내게 있어서 덕성여대신문도 그저 신념을 지키려는 과정의 일부분이었을지도 모른다.
동기들이 있었기에 2년이 넘는 긴 여정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기자 생활은 결코 혼자서 해낼 수 없다. 신문사는 기사보다 ‘사람’으로 채워지는 공간이다. “동기들끼리 친해져야 기자 생활이 가능해” 새로 들어온 후배 기자들을 보며 동기 간 자주 했던 말이다. 발행마다 새로운 사안을 취재하고, 인터뷰하며 수십 번의 퇴고 끝에 기사를 완성하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 시간을 함께 견디고 버텨준 수아, 서영, 별이 있었기에 이렇게 퇴임 기자석을 쓸 수 있다. 함께 문장 하나에 담긴 무게를 고민하고 발행을 준비하는 동료들이 있기에 외롭지 않았다. 결코 혼자가 아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비록 동생들이지만 참 많이 배웠다. 나에게는 부족했던 꼼꼼함과 집요함을 가지고 취재하는 동기들을 보며 함께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임할 수 있었다.
물론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았던 날도 많았다. 하지만 그런 다름이 있었기에 단순히 타협하는 방법이 아닌 이해하는 방법을 배웠다. 생각의 차이를 넘어 서로를 존중하는 방법을 배운 덕분에 나에게 신문사는 어느새 사람으로 채워진 공간이 됐다. 이제 각자의 길을 향해 나아가겠지만 우리는 다시금 무언가를 써 내려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이제는 기획회의도 편집일도 없는 월요일과 토요일이 허전하게 느껴질 것 같다. 비록 2년간 몸담은 덕성여대신문사를 떠나지만 또 다른 배움과 도전을 향해 한 걸음 내디뎌본다. 덕성여대신문이 그랬듯 나의 다음 이야기도 누군가에게 닿기를.
한 문장에 담긴 특'별'함
처음엔 그저 신문사나 해볼까 생각했다. 고등학교 때 신문 편집부를 얕게 경험했던 기억으로, 새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이유로, 기자로 활동하셨던 아버지의 권유로 깊이 고민하지 않은 채 제82기 수습기자 모집에 지원했다.
하지만 여러 번의 취재와 마감을 통해 독자 앞에 한 단어와 한 문장을 책임져야 하는 순간들을 겪으며, 글을 쓴다는 것 이상의 무게를 실감했다. 때로는 어떤 말을 전해야 할지, 전하지 말아야 할지를 두고 밤새 고민했다. 학교와 학생 사이에서 중립적인 글을 작성하는 일은 늘 어렵고 조심스러웠다. 학생 기자로서 학업과 학보사 활동을 병행하는 일이 벅차게 느껴질 때도 많았다. 그럼에도 어김없이 다가오는 마감 당일의 혼란과 긴장 속에서 한 호씩 완성하는 매 순간이 뿌듯했다.
기사는 사실을 기반으로 작성되지만 이를 작성하는 기자의 해석이 자연스럽게 스며들기도 한다. 그래서 기사의 방향성은 온전히 나의 몫이며 퇴고하는 일이 곧 나를 성장시키는 일로 느껴졌다. 다양한 정보를 탐색하고 부족한 점을 채우며 관점을 넓히는 시간이 참 좋았다.
이는 무거운 결정과 업무를 기꺼이 감당해준 선배 기자들과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서로를 믿고 의지해준 동료 기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사실 학보사 활동이 마냥 쉽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보람과 배움은 분명히 존재한다. 기사 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잘 만든 신문 한 호가 한 시기의 기록이 된다고 믿는다. 당장 업무가 버겁고 과중하게 느껴지더라도 중심을 잃지 않길 바란다는 말을 후배 기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다.
나는 이제 덕성여대신문사에서 맺은 인연을, 함께 만든 신문과 기록을,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가지고 나아간다. 2년 반 동안 이곳에서 보낸 모든 날에 감사하며 앞으로 독자의 자리에서 덕성여대신문을 응원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