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기억력은 우리 사회에서 특출난 능력으로 여겨진다. 시험 전 외운 내용을 모두 기억하거나 다년간 쌓은 정보와 기억들을 필요할 때마다 쉽게 떠올리는 사람은 똑똑하단 평가를 받는다.
이처럼 기억은 지적 능력의 평가 기준으로 여겨져 사회적으로 매우 가치있는 능력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기억하는 것이 마냥 좋은 점만 있는 것일까? 거꾸로 생각하면 곧 쉽게 무언갈 잊지 못한단 의미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모든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잉기억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과거의 모든 일을 기억한다. 이들은 특정 시각에 누굴 만나고 뭘 했는지 세세하게 떠올릴 수 있으며 그 당시 느낀 감정까지도 기억한다. 언뜻 보기엔 특출난 능력처럼 보이지만 이들에게 기억은 족쇄에 가깝다. 최초 질환자인 질 프라이스의 사례에 따르면 과거의 부정적인 기억이 무작위로 생각나면 당시의 두려움과 고통까지 다시 떠오른다고 한다. 이런 기억의 과잉은 오히려 삶을 무겁게 만들고 우리의 행복을 방해한다.
독일의 철학자 프레드리히 니체는 인간을 망각의 동물이라 칭했다. 망각은 흔히 부정적으로 여겨지지만 그는 인간의 망각을 단순한 기억력의 부재로 바라보지 않았다. 오히려 현재를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바라본 것이다. 망각이 있기에 우린 과거의 부정적인 기억에서 벗어나고 새로운 경험을 받아들일 수 있다. 결국 기억 또한 망각에서 비롯된다. 잊어버리기에 기억할 수 있고 이것이 끊임없이 자기 생산을 가능케 한다.
이처럼 망각과 기억은 정반대의 개념이 아니라 상호보완적 관계다. 역설적이게도 서로가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 망각은 과거의 기억에 매여 현재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돕고 기억은 경험을 토대로 성장시켜 미래로 나아가게한다. 삶을 어렵게 만드는 건 두 능력의 부재가 아닌 균형을 잃게 만드는 극단에 있다. 모든 기억을 붙잡거나 반대로 모든 기억을 잊으려 하는 기억의 극단은 결국 삶을 힘들게 만든다.
중요한 건 어떤 기억을 간직하고 흘려보낼지 선택하는 능력이다. 인간의 뇌는 모든 내용을 기억할 수 없다. 그렇기에 희미해져가는 기억을 굳이 아쉬워하기보다 앞으로 채워나갈 자리를 마련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망각한 기억만큼 앞으로 쌓아갈 소중한 기억들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 선택적으로 기억하고 필요할 때 잊을 수 있는 능력 덕분에우린 행복을 느끼고 고통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 과거의 기억에 머물기보단 현재를 살아가며 앞으로의 미래를 기대해보는 것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