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 과잉 사회 속에서의 나>
하루에도 수십 번씩 울리는 스마트폰 알림. 단체 채팅방, 공지 메시지, SNS 댓글과 피드백. 이제 사람과 사람의 ‘연결됨’은 일상이자 당연한 전제가 되어버렸고 나는 그 연결이 나와 타인과 사회의 교집합을 만들어 준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연결이 나를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어주기보다 갈수록 점점 더 우리의 삶을 피로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연결’은 소통의 ‘굴레’의 답답함으로 다가왔다. 나는 이 연결의 흐름 속에서 나 자신과 그리고 사회를 낯설게 보기 시작했다. 우리는 정말로 ‘소통’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단지 ‘반응’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 물음은 내가 이 사회에서 마주하고 있는 문제의 시작점이 되었고, 그 전선에 선 나를 성찰하게 만들었다.
미처 받지 못한 누군가로부터 걸려온 부재중 전화를 보게 되면 반가움보다 바로 받지 못했음에 대한 미안함과 집에 와서도 이어지는 관계의 연결이 부담으로 다가온다. 문자 알림이 울릴 때면 순간적으로 또 내려놓았던 핸드폰을 들어 확인하게 되고, 또 어떨 때는 이 모든 연락들로부터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카카오톡 메시지, 인스타그램 디엠이 쌓여갈수록 ‘답장을 꼭 지금 바로 해야 할까...?’라며 중요도에 따라 조금씩 뒤로 미루기도 한다. 그런데, 이건 나만의 문제는 아니었나 보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연락 오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며 예전에는 소식을 주고받는 것이 관계의 중심이었지만, 요즘은 더 다양해진 연락 매체들로 인해 그 자체의 의미가 변질된 것처럼 느껴진다.
특히 각자의 개성을 강조하면서도 모순적이게 이 시대의 소통은 더 이상 자유롭게 다양한 감정을 주고받는 행위라기보다, 더 쉽고 빠르게 소통이 이루어지는 만큼 나의 생각, 의견이 담긴 한 마디, 한 문장이 인터넷상에 남겨질 때마다 타인에게 판단 당하지 않기 위해, 평가 당하지 않기 위해 조심스레 반응하는 일로 변모했다. 메시지를 읽고도 즉시 답하지 못하면 무례하다는 평가가 따르고, 응답이 지연되면 관계가 어그러지는 듯한 불안감이 스며든다. 이러한 강박은 ‘읽씹’이라는 단어가 일상어가 된 현실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소통의 속도가 예의를 결정짓고, 응답의 유무가 감정의 진위를 평가받는 기준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것을 일상이라고 받아들이며 동화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활을 낯설게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왜 나는 늘 즉각 반응하지 못한 메시지에 미안함을 느끼는가? 왜 핸드폰 알림 하나에 핸드폰과 멀어지고 싶어 내려놓았던 게 무색하게 다시 들고 확인하고 있는가? 소통은 많아지고 넓어졌지만, 얕아진 감정적 교류와 진심으로 인해 더 외로움을 느끼는 이 시대에서 연결 과잉이 가져다준 소통의 모순을 어떻게 바라보는 것이 필요할까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다.
디지털 소통은 종종 피상적이고 단편적이다. 우리는 SNS에 스토리와 게시물을 올리며 자신의 일상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이를 통해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조금 멀리 떨어져 SNS를 다시 생각해보면 ‘자아존중감 도둑’, ‘외모지상주의를 가속화하는 주범’ 이라는 말을 듣고 있는 것처럼 현실 세계에서 나와 전혀 접점이 없는 사람의 일상을 보고 동시에 나의 일상을 전 세계에 공개하여 공유할 수 있는 거대한 가상 세계로 볼 수 있다. 우리는 이 속에서 ‘좋아요’ 버튼 하나로 관계를 유지하거나, 이모티콘 하나로 복잡한 감정을 표현하려 한다. 나는 이 과정에서 진정한 감정의 전달이 점점 더 희미해진다고 느꼈다. 관련 글들과 기사들을 찾아보던 중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말한 ‘시뮬라크르(simulacre)’ 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는데 이 개념은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가상이 진실을 대체하는 현상을 뜻한다고 한다. 마치 오늘날의 디지털 소통이야말로 시뮬라크르 그 자체다.
사람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착각 속에 살아가지만, 정작 깊은 이해와 공감은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감정을 직접 나누기보다 ‘표현된 감정’의 기호만을 주고받는 구조 속에서 나는 나의 감정도, 타인의 감정도 표현하고자하는 의미를 그대로 전달하거나 받기 어렵다. 진심을 담은 대화는 줄어들고 ‘문제 없는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한 형식적인 반응만이 오간다.
나는 점점 더 자주, 관계를 이어가기 위한 형식적인 말들을 하는 나를 발견했다. 불편하지 않게, 적당히 공감하며, 충돌을 피하려는 반응만을 반복한다. 이 반복은 나에게 감정적 소외를 안기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조차 고립감을 느끼게 만든다. 소통은 있지만, 정서적 연결은 없는 시대. 이것이 바로 내가 지금 서 있는 전선의 정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2022년 10월, 카카오톡이 하루 동안 먹통이 되었을 때의 뉴스 기사들에 적힌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뉴스에선 예상 밖의 해방감을 느낀 사람들이 많았다며 “주말에 업무 연락에서 벗어나 푹 쉴 수 있었다”는 반응과 “잠시 당황스러웠지만 온전한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며 편안함을 느꼈다”라는 글들을 읽으며 소통이 끊겼는데, 부정적인 기사들만 쏟아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긍정적으로 이 상황을 보는 글들도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나는 여기서 단절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이 아님을 보여준 것 같다. 오히려 과잉 연결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피로했는지를 말하며 우리는 이 경험을 통해 디지털 네트워크가 반드시 우리의 인간관계를 지탱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디지털 디톡스는 단절이 아닌 좀 더 진정성 있는 관계로의 회복의 기회일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앞에 연결된 소통의 연락망들은 한국 사회의 ‘정(情)’과 ‘예의’ 문화와 연결되어 있다. ‘읽고도 답하지 않으면 예의가 아니다’라는 규범, ‘단체 채팅방에서 그 무리에 속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반응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 이런 규범은 자유로운 소통을 방해하고, 감정을 관리하는 데 과도한 에너지를 쓰게 만든다. 또한 나와 연결된 집단, 사회에 속해야 한다는 욕구 역시 나를 조급하게 만든다. 나는 누군가의 메시지를 늦게 확인했을 때, 단톡방에서 내가 가장 마지막으로 어떤 답장을 보내게 될 때 내 관계가 불안정해질까 두려워한다. 결국 어떻게 보면 나를 지치게 만드는 것은 사회적 문화의 영향도 있지만 그보다 내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타인에게 기대되는 반응이나 태도가 우리 행동을 지배해 연결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보다, 연결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사회적으로 해석되고 평가된다는 점이 우리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그 속에서 나는 점점 더 ‘보이는 나’에 집중하게 되고, ‘진짜 나’는 뒤로 밀려나는 것이 아닌가를 다시 돌아보게 했다.
이 사회는 촘촘하고도 넓게 연결된 소통망 속에서 ‘끊임없이 반응해야만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인식이 있다. 학교 공지 단톡방에서도 공지를 확인했음에 대한 실시간 반응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비협조적인 사람이라는 인식과 친구 관계에서도 너무 오랫동안 응답하지 않으면 ‘거리감’이 생긴다. 이렇게 나는 ‘소통’이라는 이름 아래 평가받고, 채점받는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사회의 인식에 거리를 두고 ‘나’라는 사람으로부터 뻗어나가는 관계의 망에 집중해 보려 한다. 연락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존중하는 사람이 되고 싶고 응답의 속도가 관계의 깊이를 결정 짓는 것이 아닌 대화의 진정성이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가는 게 가능하다고 믿는다. 나의 분투는 비록 작고 느리지만, 이 시대가 요구하는 방식이 아닌, 나 자신에게 진실한 소통을 위한 실천이다. 또한 혼자 있는 시간의 가치를 재발견하고자 한다. 외부에서 오는 자극을 통해 나를 평가하고 나를 판단하기 보다 고요하게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며 스스로가 자신을 정의내리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내가 선택한 미디어 소통과의 거리는 단절이나 도피가 아니라 회복을 위한 전략이며, 타인을 밀어내는 행위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다가가는 행위이라고 생각한다.
‘연결 과잉’은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삶의 리듬을 바꾸고, 감정의 결을 바꾼다. 이제 우리는 ‘더 많이 연결되는 법’이 아니라, ‘거리를 잘 조절하는 법’을 배워야 할 때다. 약간의 거리가 주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회복할 수 있다.
<제49회 학술문예상 수필 가작 수상소감>
수필 부문에서 가작으로 선정돼 진심으로 기쁘고 감사합니다. 〈연결 과잉 사회 속에서의 나〉는 제가 실제로 여러 관계 속에서 겪어오며 고민해온 질문에서 출발한 글입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울리는 알림, 쌓여가는 메시지들, 끊임없이 요구되는 반응들. 저는 어느 순간 이 연결이 자발적인 소통이 아니라 해야 하는 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미처 받지 못한 부재중 전화에 미안함을 느끼고 메시지 알림이 울릴 때마다 내려놓았던 핸드폰을 다시 들게 되는 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왜 나는 즉각 반응하지 못함에 미안함을 느끼는가?’, ‘이렇게 많은 소통 속에서 왜 더 외로울까?’ 하는 물음들이 쌓였습니다.
특히 제가 주목한 것은 소통의 속도가 예의를 결정짓고 응답의 유무가 감정의 진위를 평가받는 기준이 돼버린 현실이었습니다. ‘읽씹’이란 단어가 일상어가 되고 메시지를 읽고도 즉시 답하지 못하면 무례하다는 평가가 따르는 사회. 저는 이 상황을 낯설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전 이 글을 통해 단절이나 회피를 말하고자 했던 것이 아닙니다. 다만 ‘거리를 조절하는 법’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타인의 기대보다 나의 리듬을따라가며 응답의 속도가 아니라 대화의 진정성으로 관계를 만들어가고 싶었습니다. 연락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존중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 글을 쓴 뒤 저는 ‘응답의 속도’가 관계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더 자주 떠올리게 됐습니다. 느리더라도 진심을 담는 것이 더 오래 가는 연결이라고 믿습니다. 이런 고민이 여러분에게도 작은 공감이나 생각의 계기가 됐다면 그보다 기쁜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