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경계 너머의 세계
디아스포라, 경계 너머의 세계
  • 김혜원 기자
  • 승인 2026.03.03 14: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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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공동체를 둘러싼 차별과 배제의 역사를 살펴보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이들에겐 다소 어색한 이야기가 있다.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조선을 고향으로 갖는 재일조선인과 러시아어를 하지만 한국의 전통 노래를 부르는 고려인들의 이야기다. 그들을 담고 있는 디아스포라의 의미와 형성 과정을 살펴보고 재외동포의 역사적 사례를 통해 우리가 마주해야 할 질문을 짚어보고자 한다.

 

제13회 디아스포라영화제 포스터출처 / 복도
제13회 디아스포라영화제 포스터 <출처 / 복도>

 

  세계 곳곳에 흩어진
  700만 동포

  최근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한국계 미국인 요리사 에드워드 리(이하 에드워드 리)가 개인 SNS에 게시한 글이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해당 글엔 그가 고향인 한국에서 활동하며 느낀 감회와 감사가 담겨 있다. ‘부서지는 파도’가 아닌 ‘한국의 바위에 달라붙은 미역’으로 남고 싶단 표현엔 자신의 정체성이 한국 사회에서 포용되길 바라는 그의 바람이 녹아 있다. 또한 그는 자신을 ‘비빔 인간’이라 표현하며 미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한국인과 미국인 사이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해 왔다고 밝혔다. 그의 이야기는 개인의 서사에서 끝나지 않는 디아스포라의 서사를 함축하고 있다.

  디아스포라는 ‘씨를 뿌리다’란 의미의 그리스어 디아스페이레인(Diaspeirein)에서 유래한 용어로 초기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을 떠나 타지에서 살아가는 유대인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했다. 이후 근대에 들어서며 △이주노동자 △무국적자 △다문화가족 등 국가와 민족을 초월하는 집단이 증가했고 현재는 조국을 떠나 살아가는 집단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장됐다. 나아가 특정 집단에 국한되지 않고 △이주 △유학 △해외 체류 등 고향을 떠나 생활하며 국가·민족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재구성하는 현상까지 포함한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단일민족주의 체제로 유지돼 왔기에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살아온 이주 공동체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사회적 요인과 역사적 배경으로 한국을 떠나 타국에 거주하면서도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집단은 지속적으로 존재해 왔다.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에드워드 리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에드워드 리 <출처/넷플릭스>

 

  한국과 일본의 경계에 선
  재일조선인의 현실

  재일조선인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이주한 조선인 가운데 해방 이후 여러 이유로 귀국을 포기하고 일본에 남은 이들과 그들의 후손을 의미한다. 재일조선인에게 조국은 한반도 분단 이전의 조선을 의미한다. 이들은 모국을 한국으로, 고국을 일본으로 인식한다.

  이러한 △조국 △모국 △고국이 각기 다른 재일조선인의 민족적 정체성은 복합적으로 형성돼 있다.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였던 과거 또한 현재 그들의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2025년 일본 법무성 출입국재류관리청 통계에 따르면 재일동포 가운데 조선적(무국적) 보유자는 2만 2,711명으로 집계된다.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는 이들은 1947년 일본이 외국인등록령을 시행한 후 분단 이전의 출신지인 조선을 국적으로 표기하며 민족적 정체성을 지켜 왔다. 2017년 발표된 논문 『재일동포의 국적과 정체성』에 따르면 이들 중 일부는 △식민지배 △분단 △차별의 역사를 상징하는 표지로서 조선적을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조선적 유지와 귀화 여부가 법적 지위의 문제를 넘어 역사 인식 및 민족적 정체성과도 연결돼 있음을 보여준다.

  재일조선인 후손들은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사회에 완전히 귀속되지 못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재정립해 나가야 하는 어려움을 겪는다. 2000년대 초반 일본 사회에선 재일조선인에 대한 혐오를 선동하는 시위가 거리에 이어졌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을 제정해 혐오 발언을 단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을 향한 혐오는 인터넷을 통해 지속되며 재일조선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그대로 이어졌다.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유시어도어 준 교수는 “재일조선인 후세대는 일본화와 한국 민족주의 사이에서 자기혐오와 저항의 순환을 경험한다”며 “고용과 복지에서 배제되는 차별로 인한 심리적 트라우마를 겪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재일조선인은 5세대에 걸쳐 일본에서 살아가며 세금을 내는 일반 시민의 자격을 갖지만 참정권은 얻지 못하는 등 미묘한 차별과 혐오 속에서 살아간다.

도쿄 신주쿠구에서 혐한 시위와 차별 반대 시위가 대립하고 있는 모습
도쿄 신주쿠구에서 혐한 시위와 차별 반대 시위가 대립하고 있는 모습 <출처/연합뉴스>

 

  돌아온 고향에서
  이방인이 된 고려인

  고려인은 구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의 구소련 지역에서 살아가는 한민족 동포다. 1863년도 함경도 주민 13가구가 기근을 피해 러시아 연해주 지역으로 이주하며 고려인의 역사가 시작됐다. 1937년도 소련 정부가 고려인 강제 이주령을 내렸고 러시아 연해주에 거주 중이던 18만 명의 한인들은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일대로 이주했다. 강제이주 피해자 대부분은 구소련 지역에 살던 독립운동 의병이었다. 이후 고려인은 농업을 통해 새로운 삶의 터전을 형성하면서도 고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했다.

  1999년 재외동포법이 시행되며 고려인들 또한 한국으로 귀환하고자 하는 의지가 높아졌다. 그러나 체류 자격은 출신 국가에 따라 나뉘었다. 중앙아시아 출신 고려인은 체류 기간이 최대 4년 10개월로 제한돼 단순 노무 중심 취업만 가능한 방문취업(이하 H-2) 비자를 받아야 했다. 반면 러시아 출신 고려인은 체류 기간 3년 후 조건 없이 연장이 가능한 재외동포(이하 F-4) 비자를 받았다. 같은 동포임에도 출신 국가에 따라 체류 자격과 권리에 차이가 발생했다. 이와 관련해 대한고려인협회는 2017년부터 제도 개선을 요구해 왔다. 마침내 지난달 11일 정부는 고려인을 대상으로 한 H-2 비
자 발급을 중단하고 F-4 비자로 통합하는 방안을 시행했다. 이에 국적과 출신 국가와 관계없이 재외동포는 해당 비자를 신청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제도 개편과 별개로 고려인의 현지 적응을 위한 제도적 발판은 여전히 미흡하다. 경기도여성가족재단이 실시한 고려인 동포 청소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려인 청소년들이 스스로 평가한 한국어 실력은 학습과 일상생활을 원활히 수행하기에 충분하지 않은 수준이었다.

  고려인에 대한 한국 사회 내 인식 또한 저조하다. 2024년 열린 디아스포라 청년 포럼에서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 박동찬 소장은 “재외동포가 가장 큰 정체성 혼란을 겪는 시기는 한국에 정착한 이후다”며 “한국을 고향으로 인식함에도 주변에서 외국인으로 받아들여질 때 다시금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된다”고 발언했다. 같은 뿌리임에도 재외동포를 외국인으로 쉽게 규정짓는 사회적 시선이 다시금 재외동포들을 바깥의 경계로 몰아넣고 있는 현실이다.

 

경기도 지역에 거주하는 고려인 청소년의 한국어 실태
경기도 지역에 거주하는 고려인 청소년의 한국어 실태 <자료 / 경기도여성가족재단>

 

  그들의 이야기에서
  우리의 이야기로

  디아스포라는 재일조선인과 고려인의 이야기로 한정되지 않는다. 체코계 유대인 작가인 프란츠 카프카는 디아스포라와 정체성에 대한 사유를 문학적 문법으로 표출했다. 그의 문학은 바깥 존재인 이방인의 시각과 그 안에서 피어나는 경계인의 자각을 그려낸다. 이처럼 경계 위의 존재들은 경계 안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늘 설명해야 하는 과정을 경험한다. 그 과정에서 따라오는 저항과 질문은 중심을 흔드는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낸다. 에드워드 리 역시 한 인터뷰에서 ‘경계인’이 아닌 ‘연결인’이라고 표현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확장했다. 이처럼 디아스포라는 단순히 경계에 선 이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정체성을 구성하고 두 가지 정체성을 연결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 한신대 문예창작학과 정한아 교수는 “디아스포라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과 사회가 이제까지 나에게 가르쳐준 관습에 질문을 던지도록 한다”고 전했다.

  디아스포라는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나 동시에 여러 문화를 가로지르는 시각을 제공한다. 그리고 이런 시각은 현대사회를 이해하고 살아가는 데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 결국 디아스포라는 경계 안팎에 머무는 존재들의 서사가 아니라 경계를 횡단하는 존재의 서사일지도 모른다. 우리에겐 타인과 자신의 정체성을 고정시키려는 시도에서 벗어나 온전한 존재로 인식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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