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를 오늘로 만드는 방법
언젠가를 오늘로 만드는 방법
  • 류수아 기자
  • 승인 2026.03.03 14: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열아홉 살, 수능이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큰 행사인지 실감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바로 지인들로부터 들어오는 초콜릿 선물이었다. 당시엔 괜히 그 소중한 응원을 독차지하고 싶은 마음에 가족들에게 나눠주지 않았다. 결국 그 중 절반은 유통기한이 지나 먹지도 못한 채 버려야 했고 초콜릿을 정리하며 아쉬움을 느꼈다. 이렇듯 모두 일상에서 습관처럼 물건을 아꼈다가 제때 사용하지 못한 경험이 종종 있을 것이다. 
  
  ‘라벤더 비누 이론’은 이와 같은 경험과 맞닿아 있다. 이 이론은 사라 제이 마스의 판타지 소설인 <유리 왕좌>에서 시작됐다. 소설 속 주인공은 값비싼 라벤더 비누가 생기자 특별한 날에 쓰기 위해 아껴두기로 마음먹는다. 주인공의 연인은 모험을 떠나기 전 라벤더 비누를 사용하자고 제안하지만 주인공은 아직 때가 아니라며 이를 거절한다. 그러나 그 모험에서 연인은 돌아오지 못하고 주인공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다. 이 이야기에 감명을 받은 독자들은 SNS에서 ‘라벤더 비누 이론’이란 이름으로 자신이 얻은 교훈을 공유했다. 관련 영상들이 인기를 얻으며 라벤더 비누 이론은 이름을 알렸다. 이후 사람들은 평범한 일상에서 아껴뒀던 옷이나 식기 등을 꺼내 사용하는 모습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언젠가를 기다리기보다 지금 좋은 것을 누리자는 것이 이론의 핵심이다. 이런 태도는 물건의 소비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방식과도 연결된다.

  한국 사회는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유보하는 경향이 강하다. 설 연휴에 오랜만에 가족들과 만나 안부를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미래에 대한 걱정들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학에 합격하며 ‘좋은 대학에 진학하라’와 같은 잔소리에서 벗어난 줄 알았지만 곧이어 취업과 연애에 관한 당부가 뒤따른다. 한국 사회의 청년들은 △대학 입학 △취업 △주거 마련 △결혼 등 인생의 주요 과제로 여겨지는 것들을 준비하며 끊임없이 미래를 대비한다.

  그러나 국회미래연구원 조사에서 20대 중 미래에 대한 △낙관 △참여 △기대 세 항목에 모두 동의한 비율은 6.5%에 그쳤다. △경쟁지상주의 △갈등 조장 △수도권 집중 현상 등 사회 구조적 문제로 인해 끊임없이 미래를 준비하고 그래야만 한단 압박에 시달리지만 정작 그 미래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현실인 셈이다.

  미래에 대한 회의감은 현재의 행복감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한국리서치에서 조사한 ‘행복의 결정요인과 그것이 삶의 의미 인식에 미치는 영향’ 결과에 따르면 자신이 행복하다고 답한 사람은 46%였고 불행하다고 답한 사람은 12%였다. 전자는 후자에 비해 미래에 대한 긍정적 기대감이 48%p 높게 나타났다. 현재를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태도가 미래를 바라보는 태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는 미래를 위한 준비기간이 아니다. 꿈꾸는 미래를 오늘로 만드는 방법은 거창한 계획과 인내가 아니라 지금 누릴수 있는 것을 최대한 누리기로 하는 결단이다. 물건에도 가장 알맞게 쓰일 시기가 있듯이 삶에도 미래가 아닌 지금 가장 행복하게 누릴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언젠가 더 좋을 때 쓰려고 아껴뒀던 물건들을 꺼내 쓰고 더 좋은 날 입으려고 했던 옷을 꺼내 입어 보자. 소중한 것을 미루지 않고 누릴 때 언제일지 모를 미래가 비로소 오늘로 다가올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도봉구 삼양로144길 33 덕성여자대학교 도서관 402호 덕성여대신문사
  • 대표전화 : 02-901-8551, 855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정민
  • 법인명 : 덕성여자대학교
  • 제호 : 덕성여대신문
  • 발행인 : 김건희
  • 주간 : 임양규
  • 편집인 : 이정민
  • 메일 : press@duksung.ac.kr
  • 덕성여대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6 덕성여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duksung.ac.kr
엔디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