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들은 보는 것으로 보이기 위한 삶을 선택하고 / 어떤 이들은 듣는 것으로 들리기 위한 삶을 선택한다 / 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 그의 뜻 / 듣는 것으로, 들리지 않는 것을 / 들리게 하는 것이 그의 뜻 / 사람은 변하는 것으로 변하지 않는 것을 말하려 하고 / 그는 변하지 않는 진리로 / 변해버린 이들에게 보게 하신다.’
‘섭리’ 라는 제목의 시입니다. 지난달 진주여고 출신 문인들의 모임인 일신문학 회원들과 통영에 모신 박경리 작가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묘소와 기념문학관에 방문했다가 특별한 경험을 했습니다. 1994년 12월 유네스코 한국위원회가 박경리 선배님을 1994년 올해의 인물로 뽑았고 회원 중에 제가 유일한 진주여고 후배라는 이유로 원주로 상패를 전해드리러 이영덕 27대 국무총리와 동행을 하게 됐습니다. 그날 박경리 선배님은 제게 교수라서 주는 것이 아닌 후배기에 주는 것이라 하시며 집안에 남아 있던 토지 16권 전부를 찾아서 주셨습니다. 그날의 감격을 떠올리며 박경리 선배님의 연보를 읽다가 ‘1994년 8월 15일 집필 26년 만에 <토지> 탈고’와 ‘1994년 12월 유네스코 서울위원회 <올해의 인물>로 선정’이란 글귀를 읽고 섭리라는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32년 전 그 섭리를 시인과 수필가가 되어 다시 마주하다니요!
1920년 종교교회의 종집을 빌어 여자야학회를 시작하신 차미리사 선생께서 1921년 근화여자학원을 설립해 1938년에 덕성여자실업학교로 인가를 받으시고 1940년 학교를 확장하셨습니다. 이후 새로운 후계자로 선택하신 덕성여자실업학교의 송금선 교장선생님은 뜻을 이어받아 10년 후인 1950년 덕성여자초급대학를 설립해 초대 학장으로 취임하신 후 1952년 지금의 덕성여자대학으로 학제를 개편하고 1961년 대학원까지 설립하셨습니다.
오늘 스승과 제자로, 선배와 후배로, 동료로 만나는 우리들에게도 준비된 적임자를 찾아내 서로 사랑하고 후원하는 아름다운 전통이 계속돼 학교법인 덕성학원과 덕성여자대학교가 새롭게 웅비하는 전기가 되길 소망합니다. 106주년 기념호 제작을 축하드리며 학생 중심 교육의 실천을 위한 덕성여자대학교의 교육이념의 가치와 성과를 마음에 새기고 덕성여자대학교의 발전을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은 모든 분들께 경의와 감사를 표합니다. 또한 우리들의 모교인 덕성여자대학교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