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다들 한 번쯤은 자유롭고 멋진 어른을 꿈꾸며 자랐을 것이다. 나 또한 어른이 되면 좋아하는 일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막상 어른에 다가갈수록 선택은 어려워졌다. 어느 순간 나는 선택 앞에서 내 마음보단 세상의 기준에 더 반응하고 있었다. 신문사 지원을 고민하던 시기에도 마찬가지였다.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은 분명 존재했지만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과 내 전공에 맞는 활동이 아닌 것 같다는 걱정이 앞섰다. 그러다 문득 하고 싶은 마음보다 여러 가지를 재가며 계산이 앞서는 내 모습이 순수하지 못하다고 느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 믿던 어린 시절과 달리 지금의 나는 꿈꾸는 법을 잊은 것 같았다. 어쩌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세상의 기준에 맞춰가며 스스로를 조금씩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 우리는 하고 싶은 마음보다 결과를 먼저 계산하게 될까. 이러한 감정은 개인적인 고민을 넘어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과도 맞닿아 있다. 책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속 대심문관 부분에선 인간이 자유를 원하지만 자유에서 오는 불안과 책임을 견디기 어려워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우리가 결과를 먼저 생각한 후 계산하는 건 자유보다 실패 없는 확실함을 원해서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유를 꿈꾸면서도 불안을 피해 선택의 갈림길에서 저울질을 반복한다.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현상학을 통해 인간은 계속해서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존재를 사유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각자의 삶 속에서 스스로 어떤 사람이 될지 끊임없이 고민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외부 요소에 영향을 받으며 수많은 선택과 마주한다. 인간은 선택을 통해 주체적인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선택의 과정에서 나 자신을 잃어가기도 한다. 따라서 우린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내가 무엇을 원하고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고 있는지에 대해 말이다. 정답이 없는 세상 속에서 선택은 우리에게 불안을 안겨준다. 그러나 그 불안은 나를 더 깊이 사유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선 내면의 작은 속삭임에도 귀 기울일 수 있는 순수한 마음이 필요하다.
순수한 마음은 세상의 기준을 알면서도 소신과 주관을 지키며 자신만의 감각을 잃지 않는 것에 있다. 책 <어린왕자>에서 여우는 어린왕자에게 마음으로 봐야만 분명하게 볼 수 있으며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처럼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결과가 아닌 진심과 내면의 목소리일지 모른다.
우리는 누구나 실수하지 않고 인정받기 위해 수없이 계산하며 선택을 조정한 채 살아간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선택의 순간마다 다시 스스로에게 질문할 수 있는 용기일 것이다. 지금 나의 선택이 내가 정말 원한 것인지 끊임없이 되묻는 과정에서 비로소 우리는 순수한 ‘나’를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