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인터뷰]혼혈인 가수 이 제임스(47)
[사회인터뷰]혼혈인 가수 이 제임스(47)
  • 양가을 기자
  • 승인 2007.03.31 1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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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 그 운명을 넘어선 그의 삶과 희망
 

사회(인터뷰) 혼혈인 가수 이 제임스(47)

영원한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

그 운명을 넘어선 그의 삶과 희망


커다란 눈, 까만 피부, 곱슬 머리. 그의 입에서 ‘다름’의 아픔을 겪어왔던 40여생의 이야기가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얼굴도 모르는 미군 아버지. 아버지가 떠나고 홀로 남겨진 어머니와 단둘이 살아가는 삶은 가난할 수밖에 없었다. 축구를 좋아해 학교 축구부에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갈 수 없었다. 돈이 없었고, 그는 사람들이 흔히 튀기라고 부르는 혼혈인이기 때문이었다. “운동하는 걸 학교에서도 탐탁지 않게 여겼고, 다른 부모들이 좋아하겠어요?”라고 이제임스씨는 되물었다. 학창 시절, 영어 시간이었다. “준호가 영어 잘 읽게 생겼으니 한 번 읽어봐라”라는 선생님의 호명이 떨어지자 주변 아이들이 키득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이제임스씨가 다른 아이들처럼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는 걸 반 아이들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임스씨는 “옷을 홀딱 벗고 있는 느낌이었어요. 얼굴은 화끈거리고 책을 봐도 글이 안 보이더군요”라며 수업시간에 느끼는 수치심으로 인해 공부와의 거리는 멀어지기만 했다고 했다.


고등학교 3학년 1학기가 되자 이제임스씨는 빨리 사회에 나가 돈을 벌고 싶어졌다. 그리하여 고등학교를 다 마치지 못한 채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지만 취업 역시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회사나 공장의 면접만 봤다하면 떨어졌어요. 함께 일하게 되면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하고 조직이 깨진다는 이유에서였죠.” 이제임스씨는 연거푸 취업의 쓴 고배를 마신 뒤 선배의 권유로 유흥업소의 가수로 활동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곳에서도 외국인 가수 노릇을 해야만 했다. 업소 생활에 젖어들게 되면서 다른 일을 찾아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어차피 사회에 나간다한들 그는 또 다시 거부 당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어렸을 때 제일 무서웠던 사람이 군인, 할머니, 꼬마아이였어요. ‘튀기새끼 지나간다, 깜둥이 지나간다’라며 아무렇지 않게 놀려대죠. 그래서 일부러 동네를 빙 둘러 집에 올 때도 많았어요.” 어린시절 이제임스씨는 항상 누가 자신을 흉보지 않을까 신경을 곤두세웠다. 더불어 미군과 아버지에 대한 반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싸움을 안 하고 지나가는 날이 없을 정도로 주위 시선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이런 감정들은 곧잘 사람들과의 시비와 싸움으로 이어졌다. 이제임스씨는 “평소에는 모르고 지내다가 가끔씩 ‘내가 정말 다르구나’라는 걸 주위에서 느끼게 해줘요. 이젠 참으면서 못 들은 척 지나가지만 그럴 때마다 씁쓸하죠”라며 어차피 겉모습이 다르기에 주위의 수군거림을 이해하면서도 항상 그러한 삶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 힘들다고 했다.


이 제임스씨는 결혼식 날 흘렸던 눈물을 회상했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수군거리고 나는 가족도 없고. 눈물이 뚝뚝 떨어지더고요.”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하게 됐지만 술을 먹고 들어 온 날이면 아내에게 신세 한탄과 푸념을 늘어놓기 일쑤였다. 부부싸움을 하다 격한 언쟁이 오고 갈 땐 자신의 피해의식으로 인해 아내에게 상처를 주고 말았다. 이제임스씨는 “아내 역시 나랑 함께 산다는 이유로 친척들에게 멸시 받고, 그렇다고 남편이 돈을 잘 벌어오는 것도 아니고…. 함께 그런 아픔을 공유했어야 했는데 말이죠”라며 지난 결혼 생활의 아쉬움을 남겼다. “지금이 20대라면 더 열심히 살았을 텐데. 철이 들고나니 이미 40살이 훌쩍 넘었더라고요.” 결혼 후 이제임스씨는 아들과 딸, 두 자녀를 두었다. 비록 아이들이 자신 때문에 놀림을 받을까 운동회 한번 마음 놓고 가본 적 없었지만 늘 자식들에게 “너는 아빠를 닮았으니 까맣다. 사람들이 놀리면 싸워라. 아빠가 책임질 테니. 하지만 울지는 말아라”고 당부했다. 다행히도 두 자녀는 이제임스씨가 청년시절에 느꼈던 아픔을 많이 받지 않고 건강하게 자랐다.


이제임스씨는 한번도 어머니를 미워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혼혈 1세대 어머니들은 많은 고생을 하셨어요. 어느 누가 미군 품에 안기고 싶었겠어요. 다 부모형제 먹여 살리겠다고 한 일인데”라는 이제임스씨는 이제라도 정부 차원에서 그들에 대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언제나 기지촌 여성과 그녀들이 낳은 혼혈인은 사회의 골치 덩어리로 치부되었다. 고향을 찾은 여성들은 동네 부끄럽다는 이유로 마을에서 쫓겨 날 수밖에 없었고, 그네들의 자식은 70년대 입양정책으로 미국으로 보내졌다. 이제임스씨는 미국의 미식축구 선수 하인즈 워드의 금의 환향과 그를 보고 열광하는 한국인들을 보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고 했다. 이제임스씨는 “그의 성공은 혼혈2세,3세에게 큰 희망이 됐어요.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하인드 워즈가 나온다면 더 뜻 깊은게 아닐까요?”라며 되물었다.


대한민국은 그들에게 희망의 땅이 돼주지 못했다. 더 열심히 공부할 필요도 더 열심히 살 이유도 없게 만들었다. 사회의 차별과 외면은 그들의 존재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국제결혼이 늘어나고 시대가 바뀌면서 혼혈인에 대한 시각도 점차 좋아질 거예요. 전 그날이 곧 올꺼 라고 믿어요”라고 말하는 이제임스씨. 이제 그들의 희망과 꿈을 위해 사회와 제도가 그들의 손을 잡아줘야 할 때가 아닐까.



양가을 기자

rkdmf214@duks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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