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마도 나홍진이 실시간에 끌린 이유는 피로누적의 얼굴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의 단편 <한汗>과 <완벽한 도미요리>를 보면 나홍진은 심지어 피로로 인해 신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체액(이를테면 땀, 혹은 눈물, 침, 피)에게까지 매혹된 것 같기도 하다. 두 단편 또한 등장인물에게 쉴 틈을 주지 않는 영화들이다. <완벽한 도미요리>는 ‘완벽한 도미요리’란 주문을 받은 어느 요리사의 분투기다. 섬세한 그의 칼끝에서 한 마리의 도미가 손질되고, 냉철한 눈빛과 손끝에서 정량의 양념들이 조합된다. 그러다 삐끗한다. 칼끝에서 그의 손가락이 잘린다. 이 쿨한 요리사는 잘린 손가락을 던져버리고 다시 요리에 열중한다. 이어 스포이드로 양념을 뿌리다 도미의 눈동자가 찔린다. 그는 자신의 눈동자를 빼내 도미의 눈에 끼운다. 오로지 완벽한 요리에만 집착하는 요리사에게 그깟 희생은 희생도 아니다. 그릴의 온도를 재기 위해 아예 손등을 갖다 댈 정도이니 그는 정말 온몸으로 요리하는 요리사다. 말하자면 이 단편의 요체는 인간의 육질에 대한 집착이다.
<완벽한 도미요리> 이후에 만든 <한汗>은 육체에 대한 집착이 육체노동에 대한 매혹으로 나타난 경우다. 제목처럼 영화는 사람들이 흘리는 땀방울을 보여준다. 목욕탕 때밀이가 흘리는 땀, 공사판 노동자가 흘리는 땀, 뜨거운 국물을 만들며 흘리는 어느 요리사의 땀 등이다. 이 영화에서 나홍진이 던지는 질문은 ‘누구를 위하여 땀을 흘리는 가’다. 계급적으로 볼 때 우위에 있는 한 남자를 등장시켜 다른 이의 땀이 이 남자의 땀으로 배출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때밀이는 이 남자의 등을 밀고, 요리사는 이 남자가 먹을 백숙을 삶고, 공사판 노동자는 이 남자의 사업적 야심을 위해 일한다. 계급적 불평등의 관계를 육체와 땀의 순환으로 연결시킨 작품이다.
<추격자>는 <한汗>과 <완벽한 도미요리>에서 나타난 육체에 대한 집착이 한데 모여 있다. 지영민의 대사에 따르면, 그는 <완벽한 도미요리>의 요리사처럼 칼끝으로 여자의 아킬레스건을 끊어 피를 빼내곤 했다. 엄중호는 미진을 찾기 위해 지친 몸을 달려가며 땀과 침을 흘린다. 지영민이 미진을 죽이는 장면에서 공중으로 분사되는 핏방울은 <한汗>에서 연출한 땀방울의 분사형태와 흡사하다. 분명 나홍진의 영화적 세계는 피로한 인간의 육체, 그리고 그 육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진득한 체액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추격자>를 본 관객들이 온 몸을 두들겨 맞은 듯 피곤했다는 감상평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 그러고 보니 <추격자>에 등장하는 서울시장이 얼굴에 맞은 것도 인간의 몸에서 나온 ‘X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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