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위에 견고한 집을 지을 수 있을까
모래 위에 견고한 집을 지을 수 있을까
  • 최민선(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 승인 2009.07.06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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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시대의 교육문제

국제통화기금(IMF)의 우리나라의 올해 성장률에 대한 전망은 가히 충격적이다. 성장률이 -4%까지 추락하며 선진ㆍ신흥 20개국(G20) 중 최하위를 기록할 것이라는 것이다. ‘명퇴’가 유행어처럼 쓰이던 외환위기의 고통을 겪은 바 있는 국민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에 최근 정부는 29조 원 내외의 추경예산을 편성하는 등 경제위기에 대한 대책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지금 시기에 중요한 점은 국민들이 먹고사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 각 가계지출에서 가장 부담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자녀교육이다. 유치원부터 초·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생에게까지 지출되는 사교육비와 대학등록금은 부모세대에게 큰 짐이다. 먹고 살 돈은 줄이더라도 자녀의 미래를 위한 교육비는 줄이기 힘들다. 모두가 달리고 있는데 나만 혼자 멈춰 설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이에 경제전문가들조차도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국가가 각 가정의 교육비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충고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오히려 교육비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어 문제다. 현재 우리나라의 사교육비는 21조에 육박한다(초·중·고등학생). 지난해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로 촉발된 세계적 경제 불황이 우리나라라고 피해갔을 리가 없건만, 사교육비는 2007년에 비해 4.3% 증가한 20조 9천억 원을 기록했다. 쓸 수 있는 나랏돈을 긁어모은 ‘슈퍼추경’에서 딱 9조 모자란 어마어마한 액수다. 사교육비에 대한 부담 정도는 지난해 5~7월에 실시된 서울지방통계청의 서울사회조사 결과에서도 나타난다. 학생이 있는 30대 이상 가구 가운데 80.4%가 “교육비가 부담스럽다”고 답했으며, 교육비 중 ‘사교육비’가 가장 부담스럽다는 답은 77.5%로 가장 많이 차지했다. 사교육비가 부담스럽다는 응답은 지난 2000년, 2004년에는 60%대였으나, 2008년에는 77.5%로 대폭 늘어나 정부의 잘못된 교육정책에 의한 고통이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으로 돌아가고 있는 형국을 보여준다.
정부의 의도는 무엇일까. 현 정부의 ‘교육개악’ 드라이브는 교육에 시장주의 원리를 적용하면 성공한다는 확신에 기초해 있다. 시장에서 외면받는 상품과 기업이 도태되듯이 공교육, 심지어 아이들이 다니고 있는 학교조차도 품질이 떨어지면 도태시켜야 한다는 신념이다.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경쟁력이 강화되고 이를 통해 교육의 질도 끌어올릴 수 있다는 발상이기도 하다.
이제 이명박 정부의 구체적인 움직임을 살펴보자. 지난해 정부는 빠르고 신속하게 일을 진척시켜 나갔다. 그 과정에서 정부가 발표하는 각각의 정책은 인수위 시절부터 지금까지 많은 반발을 불러왔다. 영어몰입교육 실시 발표는 ‘오륀쥐 파동’을 일으켰고, 0교시, 우열반, 야간자율학습 등에 대한 규제를 푸는 학교자율화 조치는 ‘미친 교육’으로 불리며 촛불정국을 만들었으며, 일제고사 실시로 시험 대신 체험학습을 허락한 교사 11명에게 교직사회의 ‘사형선고’와도 같은 파면·해임의 중징계를 내렸다. 또한 서울시교육청은 ‘초등학생 입시 부활’을 우려한 지역주민과 교육위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두 개의 국제중 설립을 강행했고, 정부는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숙형공립고 82개, 마이스터고 9개를 지정·고시했다. 결국, 이러한 일련의 흐름은 해방 후 최초로 교육학자 110명이 ‘교육철학이 부재한 이명박 정부의 시장주의적 교육정책이 국가 사회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는 내용의 집단 성명을 내기에 이르렀다.
올해도 정부는 불도저식 밀어붙이기 행보를 유지할 계획이다. 아니,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정부는 지난해에 다져놓은 모래위에 견고한 집을 지을 생각이다. 지난 2월, 일제고사 성적을 공개해 전국의 180개 학군을 성적으로 한 줄 세운 ‘학교정보공개’는 첫 신호탄에 불과하다. 올해 말에 학교선택제가 실시되면 성적 공개를 통해 밝혀진 등수가 높은 명문학군·학교에는 학부모의 선택이 집중되고, 등수가 낮은 기피학군·학교는 학생 수 감소, 정부지원 축소의 악순환을 겪게 된다. 학교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여기에 정부가 이미 예고한대로 자율형 사립고 30개가 설립되고 서울시교육청이 서울의 25개 자치구별로 1곳 씩을 자율형 사립고를 만든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국제중→특목고/자사고→명문대’로 이어지는 엘리트코스가 더욱 공고해지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특수학교를 가지 못하면 명문대는 꿈도 못 꾼다’는 사회적 위기감에 모든 초·중학생이 특목고·자사고와 같은 특수학교를 가기 위한 1차 경쟁과 일반고 중에서도 명문학교를 가기 위한 2차 경쟁을 치르게 될 것임은 불 보듯 뻔한 얘기다.
학교자율화에 이어 대입자율화 조치도 실시된다. 각 대학에 대입전형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수능을 없애 2012년 이후에는 대입을 완전히 대학자율에 맡기겠다는 내용이다. 이에 발맞춰 지난해부터는 대교협 관계자들의 ‘3불 정책(고교등급제, 본고사, 기여입학제) 폐지’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나마 있던 대학의 공공성을 유지하기 위한 규제 장치들을 풀어버리겠다는 것이다. 위와 같이 재편된 중등교육 구조를 기반으로 ‘3불 정책’과 ‘대입자율화’가 실시된다면 우리나라는 학벌구조를 깰 수 있는 기회를 영영 가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
더욱이 문제는 현재 우리나라의 학벌구조가 부모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재편되고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 통계청에서 발표한 ‘2008년 사교육비 조사결과’를 보면, 소득수준별로 월 700만 원 이상 가정의 1인당 월 사교육비가 약 47만 원인데 비해 월 100~200만 원 가정은 약 11만 원, 월 100만 원 미만 계층은 약 5만 원에 불과해 부모의 소득수준에 따른 사교육비의 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있음이 확인된다. 일제고사 성적공개에서도 같은 지역 내에서도 뚜렷한 성적의 차이를 보이는 학교들을 비교해보니 ‘사교육 특구’라 불리는 지역의 학교 성적이 월등히 높았다. 이러한 결과들은 우리나라의 심각한 교육양극화 진행정도를 보여준다.
이와 같이 이명박 정부의 경쟁 위주의 시장주의적 교육정책은 영국과 미국의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공교육의 몰락과 사교육의 득세, 10% 내외의 명문 사립학교와 대다수 별 볼일 없는 공립학교로 구분 편재되는 중등교육 구도, 소득 상위 계층의 귀족교육과 중하위 계층의 교육 포기·방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미 지난 20여 년 간 철저한 실패로 귀결된 영·미식 신자유주의적 교육개혁 따라하기를 더 이상 좌시해서는 안 될 시점이다.

*이번 호에 이어 556호(4월 16일 발행)에서는 ‘이명박 정부 시대, 우리나라 교육이 지향해야 하는 방향’에 대한 주제로 사회기획이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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