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질’의 에너지를 긍정하다
삽질’의 에너지를 긍정하다
  • 강병진<씨네21> 기자
  • 승인 2009.07.06 15: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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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미 감독         <출처=씨네21>
“공격이 최선의 방어.” 양미숙의 핸드폰에 써 있는 문구다. <미쓰 홍당무>의 양미숙은 왕따다. 얼굴이 못 생겼다. 게다가 종종 빨개진다. 제자들은 무론이고 동료선생들도 그녀를 싫어한다. 그래서 그녀는 왕따다. 하지만 사실상 양미숙을 왕따로 만드는 것은 외모가 아닌 그녀의 공격적 성향이다. 그녀는 주변 사람들의 의도를 상관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이 겪는 고통이 못생긴 외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녀만의 착각이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을 인생의 지표로 삼는, 그래서 “착하게 살지 마라, 그럼 사람들이 너한테 못되게 군다. 못되게 굴면 착하게 군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착각이다. 다시 말해 ‘삽질’이다.
  이경미 감독의 <미쓰 홍당무>는 이 삽질 때문에 웃기다. 단, 그 웃음에 공감하는 이유는 주인공 양미숙이 시집을 못 간 29살의 못생긴 여자 선생님이기 때문이 아니다. 콤플렉스를 공격적으로 드러내는 그녀의 삶의 방식에 공감하는 것이다. 이런 삽질을 정말 양미숙만 할까? 혹은 29살의 못 생긴 여자만 할까? 그럴 리 없다. 사람은 누구나 콤플렉스를 느낄 수 있고, 누구나 콤플렉스를 화로 치환시킬 수 있고, 그래서 누구나 ‘진상’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삽질은 만인의 것이다. 다만 양미숙은 자신이 진상인 걸 알아도 괘념치 않는 여자일 뿐이다. 물론, 그런 걸 고민할 만큼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이경미 감독의 단편 <잘돼가? 무엇이든>은 이 ‘진상’의 요체에 대해 묻는 영화다. 주인공 지영에게도 공격은 최선의 방어다. 문학을 꿈꾸던 지영은 어느 해운회사에 취직한다. 돈 때문에 일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만둘 생각을 하고 있다. 적어도 스스로는 고고한 척 산다. 어느 날, 사장은 그녀에게 세무감사를 대비한 탈세작업을 시킨다. 지영은 불법적인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이 상황에 화가 치민다. 하지만 그녀의 화는 탈세 작업을 함께하는 동료직원 희진에게 튕겨간다. 희진이 자신의 업무영역을 침범하는 것이나, 겉으로는 성실한 척하면서 잇속을 챙기는 모습이나 사사건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영화는 이 두 여자의 미묘한 공방을 보여준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자. 사실 지영이 칼끝을 세워야 할 곳은 사장이다. 탐욕스러운 사장 때문에 이 짓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잘돼가? 무엇이든>은 지영의 엇나간 공격성향을 꿈 장면으로 요약한다. 꿈속의 지영은 옷 속에 칼을 숨긴다. 칼끝은 그녀의 목덜미를 향해있다. 이때 옆을 지나가던 누군가가 그녀를 친다. 그 바람에 칼이 지영의 목을 긋는다. 지영은 억울한 듯 따진다. “사람이 다치면 어쩌려고 그렇게 치고 지나가요?” 들려오는 대답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누가 몸속에 그런 칼을 넣고 다니래?” 자, 누구의 잘못인가. 이 장면은 ‘진상’은 왜 ‘진상’이 됐는가에 대해서 묻기만 하는 게 아니다. 잘못된 삽질은 내 발밑을 팔 수 있다는 보편적 진리까지 포함시키고 있다.
  지영의 꿈은 분명 양미숙도 꿀 만한 꿈이다. 양미숙 역시 삽질에 열중하다 식음을 전폐하다시피하고 결국 피를 흘리기까지 한다. 심지어 그녀는 자신의 목적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양미숙은 “도대체 네가 원하는 게 뭐냐”는 질문에 “바빠서 거기까진 생각을 못해봤다”고 답한다. 삽질이란 그런 것이다. 바쁘기만 할 뿐 남는 것도 없고 배만 고픈 것. 그럼에도 우리가 양미숙의 진상을 귀엽게 봐줄 수 있는 것은 삽질의 에너지를 긍정하는 감독의 시선 덕분이다. 이경미 감독은 삽질도 또 다른 삶의 의지로 본다. 밥 먹고 할 일없이 삽질만 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밥 먹고 삽질도 안하는 것 보다는 낫다는 주의다. 하긴. 그래야 ‘무엇이든 잘 될 거야’라는 순진한 믿음도 가능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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