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레드마리아다
우리는 레드마리아다
  • 문정현 다큐멘터리 감독
  • 승인 2012.04.02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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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멘터리가 정말 현실을 기록할 수 있을까? 있을법한 이야기를 극화시켜 메시지를 만들어 내는 극영화와 달리 관객들은 다큐멘터리를 현장의 사실이라 강하게 믿는다. 하지만 특정 대상이나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당연히 이를 수용하는 주체의 개인적인 태도가 개입된다. 내가 만나고 경험했던 현실을 나의 이야기로 재가공해 타인에게 그 현실을 재인식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윤리와 철학은 항상 재현양식의 중요한 전제가 되며 도덕성과 신뢰를 중히 여기는 장르적 한계를 가지게 된다.

  사회의 권력과 편견 그리고 가부장적 폭력에 반기를 들고 시스템 모순에 대한 혁명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왔던 다큐 제작집단 ‘빨간눈사람’의 경순 감독이 신작 <레드마리아>를 내 놓았다. 감독은 한국, 필리핀, 일본을 오가며 14명의 여성들을 만난다. 이들은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주여성, 위안부 할머니, 성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홈리스 등 노동 여성들이다. 경순 감독의 전작들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주류질서와의 충돌을 능동적으로 해석해냈다면, <레드마리아>에서는 여성들의 일상을 차분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시선 속에서 감독은 노동의 시작, 즉 이 세상을 인지하게 하는 몸에 집중한다. 그의 말대로 ‘삶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짓무르고 주름진 배’를 카메라에 담으며 여성의 몸이 가지고 있는 연대와 정치를 이야기한다. 천박한 자본의 노예로 전락한 개인의 가치를 되찾을 수 있는 방법. 즉 몸이 원초적으로 인지하는 폭력적인 세상에 대한 성찰과 변화를 위한 유?무형의 실천이 바로 그 시작이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더불어 우리의 몸이 실천과 정치가 된다면 가부장사회의 억압적인 틀을 깨어낼 수 있다고, 우리 모두가 ‘레드마리아’가 되어야 한다고, 아니 우리 모두는 원래 ‘레드마리아’였다고 외치는 듯하다. <레드마리아>를 보며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는 것은 현실을 기록하는 매체로서의 가치보다 현실기록의 조합을 통해 우리가 표면에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을 찾아가는 긴 여행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다큐를 통해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될 수 있는지 경험해 보기를 강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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