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보고 있을까?
나는 보고 있을까?
  • 김형희(미술사학 00) 동문
  • 승인 2012.06.11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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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라는 작은 틈바구니를 벗어나 대학교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마주친 세상은 생각보다 혼란스러웠다. 간절히 원했던 자유에 꿈꿔온 대학생활을 찾아보려 했으나 정신적으로는 아무 준비도 되어 잊지 않았기에 그토록 갈망하던 자유는 어느덧 무거운 짐이 됐다. 무엇인가 해야 할 것 같은데 무엇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고민 가득한 그 시절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는 내가 정신적으로 좀더 성숙 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현대사회 속 우리는 손쉽게 정보에 노출되고 언제든지 원하는 정보를 선택해 보고 있지만 사실 전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철저한 개인주의 속에서 이웃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진실을 담지 않는 신문기사를 읽고 있는 현실과 마주하며 우리는 과연 보며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때문에 눈을 통해 사실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축복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눈이 멀어버린 소설 속 세상에서 주인공에게 본다는 행위는 인간의 추악함에 대한 목격자 역할 만을 부여한다. 우리도 눈뜨고 있지만 쏟아지는 정보와 사건 속에 누군가의 외침을 외면하고 부정하면서 이 사회의 강요 없이도 눈먼 자의 도시가 될 수 있도록 동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소설은 어렸던 내가 처음으로 인간행위에 대한 절대적 기준과 인간이 가진 조건의 한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절대적 진리이며 가치라고 믿어왔던 것들에 대한 의구심과 어쩌면 나는 보고 있지 않다는 문제제기는 충격적이었고 세상과 나를 분리시켜 생각하게 된 첫 단추가 됐다. 그러나 여전히 주인공처럼 눈뜬 채로 세상을 보고 있는지 아니면 눈먼 자로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계속되고 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건, 사고 그리고 폭로 속에서 과연 나는 눈 뜨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눈이 멀어 있으며 눈먼 자들의 도시인으로서 사회가 강요하는 이미지와 우상, 그리고 주어진 체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혼란 속에서 어쩌면 난 끝까지 눈뜨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무거운 생각이 마음을 짓누른다. 사회인이 된 지금 나만 볼 수 있다는 진실보다 더 무서운 건 볼 수 있어도 보지 않는다는 사실임을 알기 때문이다.

  “볼 수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소설 속 구절은 현재 우리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어떻게 어떤 것으로부터 눈이 멀었는지는 모른다. 그래서 우리가 지켜야 한다고 배운 것들을 외면하고 거리낌 없이 눈이 멀기를 자초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게 우리는 눈뜬 채로 비이성적인 세상을 배회하며 눈먼 자들의 도시를 살고 있다.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우상과 권위 체제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무지한 인간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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