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거부! 경쟁거부!
비교거부! 경쟁거부!
  • 곽정연(독어독문학과)교수
  • 승인 2013.04.01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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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에게 덕성여대 독어독문학과를 왜 선택했냐고 물었을 때 가장 많이 듣는 대답이 성적에 맞춰서 왔다는 것이다. 한국학생들은 이렇게 대부분 다른 학생들과 성적을 비교하여 대학을 선택한다. 한국대학엔 서열이 존재하고, 대학 입학과 더불어 학생들의 등급도 매겨지는 듯하다. 그래서 중·고등학교, 아니 초등학교부터 소위 일류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그렇게도 노력한다. 누구도 유일무이한 자신의 존재를 비교당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의 이십대는 이렇게 비교당하고 등급 매겨져 사회에 나갈 채비를 한다.

  존재의 의미는 희미해지고 일류대학 진학을 목표로 기형적으로 공부에 매달려야 했던 고등학교 시절이 나에게는 그래서 참담했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여러 차례, 여러 군데 지원할 기회가 없었다. 자신의 성적에 맞추어 지원한 다음 탈락하게 되면 후기대학에 다시 한 번 지원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소위 SKY 대학들은 후기모집을 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재수를 하게 된다.

  신념 없이 떠밀려져 공부한 탓인지 일류대학 입학은 좌절되었고, 다행히도 후기대학들 중에 나에게 등록금 전액과 함께 상당액수의 생활보조금을 약속하는 대학이 있었다. 당시 한국 교육에 회의적이었던 나는 꼭 들어가고 싶은 대학이 없었기에 나를 대접해 주는 대학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이런 결정에 아버지는 일류대학을 졸업하지 못해 평생 고생하는 것보다 일 년 더 노력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조언해주셨다. 하지만 빛나는 20대를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위해 희생할 수 없다고, 그리고 미래는 내가 개척할 것이라고 아버지를 설득했다. 내가 선택한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삼년 안에 조기졸업을 할 수 있었다. 공부하는 것이 나에게 맞는 일인지 확신이 없었던 나는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오리라는 원대한 꿈은 없었고, 단지 유럽에, 아니 미지의 세상으로 나간다는 설레는 기분으로 독일로 떠났다.

  독일에서는 나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할 필요도 없었고, 비교당할 일도 없었다. 독일의 대학은 평준화되었다. 각 대학은 그 지방을 대표하고 그 지방 주민의 자랑이다. 실험기구나 실습 등의 이유로 입학정원이 정해진 몇몇 학과를 제외하고 학생들은 자신이 가고 싶은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고, 원하면 언제든지 옮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 고등학생들은 취미생활도 즐기면서 여유로운 청소년기를 보낸다. 그렇다면 독일학생들이 대학을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기준은 바로 교수이다. 어떤 교수가 어떤 분야의 전문가이고 어떤 이론을 주장하고 있는지가 학생들의 대학선택의 기준이다. 독일학생들은 대학에 들어와 자신이 선택한, 자신이 가르침을 받고 싶은 교수 아래서 비로소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게 된다. 대학의 성적도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에 의해 부여된다. 그리고 최소 기준에 미달되면 졸업을 할 수 없다.

  기초가 부족하다는 생각에서 학사과정부터 다시 시작한 나는 존경하는 교수님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공부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어 큰 어려움 없이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오자 발표한 논문보다는 여전히 그 옛날 내가 나온 출신 대학이 다시 나를 등급매기고 평가하는 기준이 되었다. 모교가 아니면 교수로 임용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연구에 몰두하고 그것을 학생들에게 제대로 전달한다면 나를 필요로 하는 대학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나는 통념의 벽을 넘었다.

  어느 순간에는 비교와 경쟁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필요치 않은 경우에도 비교와 경쟁을 강요한다. 경쟁이 더욱 좋은 성과를 가져오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비교와 경쟁에서 오는 성과는 존재를 물화(Verding-lichung)시키기 때문에 미천하고 보잘 것 없고 허무하다. 진정한 성과는 절실한 욕구에서 오고, 절실한 욕구는 유일무이한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인정했을 때 비로소 인지할 수 있다.

  덕성여대 학생들이 비교당하고 등급 매겨지는 것을 거부하길 바란다.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길 바란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을 성취하길 바란다. 그리고 성취한 것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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