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9세기, 시적 공간으로서의 한양에 대한 일고찰
18~19세기, 시적 공간으로서의 한양에 대한 일고찰
  • 김은희 덕성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 승인 2013.04.02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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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류와 통합 공존에 주목하여

이 논문은 ‘한양’이라는 공간을 형상화하는 18~19세기 작품들의 공통적 특징 중, 작품 에 내재되어 있는 당대인들의 인식 변화에 관심을 두었다. 당시 시 창작자들이 ‘한양’을 형상화하는 양상에 내재되어 있는 의식, 관점의 특징과 변화를 살피는 데 주력하였다. 시 조․가사․한시의 세 분야 작품을 대상으로 18~19세기 시적 공간으로서 ‘한양’에 드러나 는 문학적 의미를 그 형상화 양상에 중심을 두어 살핀 것이다.

특히 도시의 발달과 상업화에 따른 여항-시정 공간에 주목하여, 상층의 고급문화와 하 층의 서민문화가 상호 교류하면서 공존․통합하는 양상을 시적 공간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18~19세기 시가작품들에서 ‘한양’은 상층 사대부의 공간, 윤리적 유가적 공간을 노래하기도 하고, 하층 民의 공간, 세속적 욕망의 공간을 형상화하기도 하지만 이 두 대립적 지향이 이 시기 새롭게 대두되는 공간인 市井에서 화합하고 상생하며 공존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그 양상은 (1) 동일 작가의 작품들에 유가적 격조와 여유를 지향하는 공간과 세속적 욕망의 공간을 형상화한 두 경향이 공존하기도 하고, (2) 신분상 상층인 전형적인사대부 작가가 전형적 상층 갈래인 漢詩에 시정의 세속적 인물과 세태를 생생하게 형상화함으로써 상하문화가 융합하는 문화의 수평적 전환을 보이기도 하며 (3) 한 작품 내부에 조선왕조 송축이나 도성으로서의 자긍심을 표출하는 전형적인 이념적 태도와 시정풍경의 생기발랄한 통속성이 공존하기도 하였다. 市井은 상업적 공간이다. 바로 이 조건이 새롭게 발달된, 물류와 문화의 교류 혹은 교환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토대가 되며, 따라서 公衆的 공간이며 현실적․구체적 공간이다. 시적 공간으로서 ‘시정’은 18~19세기에 교류의 공간, 화합의 공간, 공존과 상생의 공간, 수평적 전환의 공간, 多衆의 공간으로 형상화되어 있음을 일부분 확인하였다. 이 글에서 대상으로 삼은 작품들에서, 18~19세기 시 적 공간으로서의 ‘한양’은 사회적 갈등을 드러내거나, 혁신을 주장하기보다는 교류의 공간 인 시정의 활기와 낙관에 힘입어, 기존의 유가적․이념적 가치와 현실적․세속적 가치가 조화를 이루어 상생하고 공존하며 통합하는 양상으로 형상화되어 있었다.

다만 자료적 참신성의 부족과 폭 넓은 자료 제시가 미흡하여 18~19세기, 시적 공간으로서의 한양 전반에 대한 고찰에 이르지 못한 점이 있다. 이 논의를 확장시켜 나감으로써 18~19세기 시가의 시적 공간에 대한 고찰이 보다 통합적으로 이루어지길 바란다.

1. 서 론

‘한양’에 대한 문학적 연구는 초기 선학들에 의해 주로 가사 <한양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이후 ‘18~19세기’ 및 ‘도시화 양상’과 관련된 관심들이 주를 이룬다. 90년대에는 ‘한양’ 관련 가사와 한시, 시조에 대한 연구가 이어졌으며, 특히 1994년 한국고전문학회에서 서울 定都 600주년을 맞이하여,『문학작품에 나타난 서울의 형상』이라는 주제로 한문학, 고시가, 구비문학, 고소설 등 제 영역을 폭넓게 다룸으로써 ‘한양’에 대한 총체적이고 체계적인 이해와 점검을 가능하게 하였다. 2009년 한국고전문학회 주최 ‘조선 후기 서울지역의 문학과 도시문화사’라는 주제의 학술대회에서는 다시 한 번 ‘조선 후기 서울’과 ‘문학’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함으로써 ‘한양’과 ‘문학’에 대해 보 다 진전된 연구가 이루어졌다.이 밖에도 18~19세기 시가자료를 통해 도시적 삶의 양상과 의미를 살펴보거나 여전히 <한양가>에 대한 관심이 표출되었다.

이처럼 ‘18~19세기 한양’은 지속적으로 광범위하게 관심의 대상이었으며, 연구 성과 또한 상당히 축적되었다. 특히 ‘18~19세기’는 ‘한양’ 나아가서 조선의 변화가 감지되는 시기이며, ‘한양’이라는 공간에 대한 시적 형상화에 새로운 경향이 나타나고 있음을 연구자 대다수가 동의하고 있기도 하다. 아울러 기존 논의에서는 18~19세기 한양의 변화를 가져온 사회․경제적 요인으로서 상품화폐경제의 확대, 도시의 성장, 상공업의 발전, 인구의 증가 등을 공통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러니까 18~19세기에 한양은 도시 상공업과 화폐경제의 발달로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변화가 일어났으며, 그 결과 시정이라는 새롭게 발달된, 물류와 문화의 교류 혹은 교환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공간이 관심사로 대두되고, 시정의 유흥문화 공간을 중심으로 한 중간계층의 대두를 특징으로 하고 있음에 동의하고 있다.

기존 논의들 중에는 작품 내용을 통해 ‘한양’이라는 현실 공간 혹은 역사적 공간을 정리하고 이해하는 방식이 하나의 경향으로 나타난다. ‘한양’을 소재 로 한 시가들을 역사적 사료처럼 접근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이 경우, ‘한양’ 을 지금의 ‘서울’과 관련지어 인식하고 이를 반영하려는 경향이 함께 한다. 이를테면 ○○에 투영된 한양, ○○에 나타난 서울, ○○와 서울식의 접근 방식이 그것이다. 그러니까 작품 자체의 문학적 분석이나 그 의미에 대한 이해보다는 시가 자료를 토대로 도시적 삶의 양상을 파악하거나 시대적․문화적 변화를 정리하는 방식이다. 그 결과 18~19세기 한양의 변화와 특징은 사회적․예술적․문화적․역사적인 면에서 매우 광범위하면서도 꼼꼼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이와 같은 다양한 연구 성과에 불구하고 “18~19세기, 시적 공간으로서의 한양”이라는 주제에 주목하는 것은 ‘한양’이라는 공간을 형상화하는 18~19세 기 작품들의 공통적 특징 중, 작품에 내재되어 있는 당대인들의 인식 변화에 관심을 두고 살피고자 함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기존 논의를 참고하면서 당시 시창작자들이 ‘한양’을 형상화하는 양상에 내재되어 있는 의식, 관점의 특징과 변화에 주목한다. 18~19세기의 시대적 변화에 대한 논의는 기존의 논의에 기대어 접어 두고, 시조․가사․한시 세 분야의 몇 작품을 대상으로 18~19세기 시적 공간으로서 ‘한양’에 드러나는 문학적 의미의 일면을 그 형상화 양상에 중심을 두어 살피려는 것이다.

특히 도시의 발달과 상업화에 따른 여항-시정 공간에 주목한다. 이 공간이 상층의 고급문화와 하층의 서민문화가 상호 교류하면서, 신분에 상관없이 통 합하는 탈신분적 성향에 기반하고 있으며, 인간 성정의 자연스런 분출, 국문 시가 옹호론, 실질적․리얼리즘적 사고, 세속화 취향, 집단적 공유의 대중화 경향을 담론 기반으로 하고 있음에 동의한다. 이 글에서는 18~19세기 ‘한 양’을 형상화하는 시가작품들 내부에 드러나는, 새롭게 발달된 물류와 문화의 공간인 市井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교류․통합, 공존 양상의 일면을 고찰 하려는 것이다.

한시인 강이천의 <한경사>와 <성시전도시>, 가사인 한산거사의 <한양가>, 조선 후기 시조 몇 작품을 대상으로 한다. 이들은 18~19세기 ‘한양’을 형상화하고 있는 대표적 작품들이며, ‘서울의 도시성과 관련된 시적 경향’을 보이 는 작품들임을 기존 연구에서 이미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형상화 양상이 ‘한양’이라는 도시가 품고 있는 모든 대상들, 공간적으로는 궁궐부터 시정에 이르기까지, 계층적으로는 왕에서 노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인간 군상들, 문화적으로는 궁궐행사, 사대부의 풍류현장부터 서민의 생활풍습, 놀이마당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글에서는 시적 공간으로서 18~19세기 ‘여항-시정’의 교류와 통합, 공존에 주목하다 보니 위 작품들에 공통적으로 형상화되어 있는 현실적․구체적 공간을 그 대상으로 하게 되었다. 그 결과 ‘종로 저자거리’ ‘광통교’ ‘필운 대’ ‘구리개’ 등 ‘동일 공간’이 확인되었으며, 따라서 이들 공간을 중심으로 그 시적 형상화 양상에 주목하여 접근하는 방식을 택하게 되었다. 동일 ‘공간’에 서 이루어지는 교류와 통합, 공존 양상은 (1)동일 작가의 경우, (2)사대부 작 가와 그의 작품 형상화 양상, (3)동일 작품 내부의 존재 양상으로 구체화 되었다. 이는 한양을 형상화하는 태도와 시선을 분석하고,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방법론으로서 18~19세기 시적 공간으로서 ‘한양’ 전반에 대한 고찰이라 기보다는 그 일면에 대한 관심이 도달한 지점, 소통과 공존의 효과적 제시를 위한 실증적 분석이 도달한 지점이다.

2. 18~19세기 ‘한양’과 ‘시정’

조선시대 한양 주민들은 신분이나 직업에 따라 종로를 경계로 하여 살았다 고 한다. 왕족과 양반관료들은 경복궁과 창덕궁을 연결하는 직선 이북의 지 역, 지금의 율곡로 양쪽 일대에 모여 살았으니, 계동, 가회동, 원서동, 안국동 등의 북촌이 그들의 거주 지역이었다는 것이다. 서울을 남촌과 북촌으로 나누 면 그 중간지대인 청계천(광통교) 일대가 위항이었으며, 좁은 집들이 모여 있었던 누상동이나 누하동을 중심으로 한 인왕산 일대도 위항이었는데, 청계천 일대에는 역관이나 의원으로부터 상인에 이르기까지 재산이 넉넉한 위항인 들이 살았으며, 인왕산 언저리에는 위항인 가운데 주로 서리나 아전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여기서 ‘직업’에 따라 모여 사는 양상이 새로운 현상으로 주목된다. 그동안 신분 중심의 공간화 양상이 생산 활동 혹은 경제 활동에 의 한 공간화 양상으로 변화되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시가문학에도 이러한 공간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 18~19세기를 사는 한양인들의 의식 변화가 문학적으로 형상화되고 있음이다.

또한 19세기 가곡의 폭발적 수요와 관련지어, 박효관의 필운대를 상징으로 하는 전형적인 도시 고전 지향(예도적 지향이 확인되는)의 공간인 우대와, 도시적 공간임은 같지만 통속 지향의 공간이자 고전 모방도 확인되는 공간인 아래대를, 통합적으로 ‘성내’의 공간으로 보는 견해도 좋은 참고가 된다. 즉 우대와 아래대를 문화사적으로 교류하며 공존하는 공간으로 보는 입장이다. 다음 글은 사설시조에 관한 언급이지만, 18~19세기 ‘한양’과 ‘시정’의 문학적 형상화에 대해 그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설시조에 형상화된 인간상에는 물욕-성욕-문화욕을 추구하는 욕망의 인간 과 유가적 윤리 도덕을 추구하는 인간이 공존하는 것이다. 이 두 지향의 노래가 함께 향유되고 ‘화합적 화해로 공존’하는 현상이 18세기 우리의 근대적 모습이 다. 시조에는 “충효도덕을 노래한 것도 있고, 음일설탕을 노래한 것도 있다”([대 동풍아』 서문)라는 진술이 그 점을 명확히 확인해 준다. 이러한 두 지향이 화합 적 화해로 공존하고 있고, 특히 지나친 물욕추구를 유가적 윤리도덕으로 제어함 으로써 18세기에 경제적 수평화는 더디게 진행되었지만 과도한 물욕 추구는 일어나지 않고 건전한 정신사회와 문화를 지탱할 수 있었다.

대표적 여항시인이었던 정내교의 ‘한시’에서도 이러한 양상이 확인된다. 그는 18세기 ‘한양’, 특히 ‘시정’을 활력과 경제적 여유의 확산 공간, 세속적 욕망 의 공간으로 형상화하지만, 여기에는 도덕적 우려의 시선이 공존하고 있다.

18세기에 이미 ‘한양’은 “밥 짓는 연기와 추녀가 끝없이 이어지고, 수레먼지 속에 어깨가 부딪히(其三)”는 번화하고 활력이 넘치는 공간이며, “동네마다 푸줏간 널려있어, 날마다 몽둥이로 소 돼지를 때려잡네, 애 어른 모두들 고기 맛 즐겨, 종아이까지도 푸성귀는 싫어(其五)”하는, 일반 서민에까지 확산된 경제적 여유의 공간, 물질적으로 수평화 되어가는 공간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반면에 “어렸을 적부터 반은 거간꾼이 되어, 어린애들까지 돈 좋은 줄만 안다 네(其六)”에서는 물질적 욕망이 확산되는 공간으로서 ‘한양’에 대한 우려 의 목소리가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18~19세기 시에서 ‘한양의 시정’은 이미 물질적 교류가 왕성한 공간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새벽녘 사대문 열리니/ 말과 수레에 짐을 싣고 한 떼가 몰려오네/ 생선 소금 야채들 많고도 많도다/ 떠들석히 사고서 巳時전에 돌아가네

새벽녘에 서울로 몰려드는 무수한 생선과 소금 그리고 야채가 오전 중에 다 팔리는 梨峴, 昭義門의 저자거리 광경이다. 새벽 4시 인경 종이 3번 울리 자 사대문이 열리고 수많은 생산품이 순식간에 유통되는 현장이 생동감 있게 그려진다. 물산의 풍성함과 혼잡스러움, 떠들썩함과 활기찬 시정 풍경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한양가>에도 ‘시정’은 활기와 수많은 물화로 가득 찬 풍성한 소비 공간으 로 형상화 되어 있다. 백각전(칠패의 생선가게, 남문안의 과일가게, 쌀가게, 빗․주머니․허리띠․방석․보료․담요․종이․두루마리 등 온갖 것을 파 는 각색 상전)과 큰광통교(남대문로 1가)의 육주비전(무명 파는 백목전, 종 이 파는 지전, 옷감 파는 베전, 국내외 여러 물품, 바늘․비단․방석․고 약․모자․중국산 사탕까지 파는 청포전, 온갖 서울 비단을 파는 선전, 말린 해산물을 파는 어물전), 작은 칼과 패물을 파는 마루저자의 도자전, 소광통교 (광교)의 그림가게, 각색 약을 파는 구리개(을지로) 점방에 이르기까지 한양 시정의 각종 상점이, 물품 중심의 點景으로, 가사 특유의 조목조목 다 갖추어 말하기 방식에 의해 소상히 구체적으로 나열 소개된다. 즉 

와 같은 선행발화에 이어지는 구체적 물화의 열거를 통해 길게 부연되고 확장되는 양상의 규칙성이 특징이며, 경쾌하고 생동감 넘치는 분위기로 형상화된다. 또한 시정에서 장사하는 양상이 사실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손님 불러서 흥정을 붙이는 여립군과 가게 내고 물건을 파는 전시정의 차림새, 사람 불러 흥정하는 모양이 ‘경박하기 측량없다’는 논평과 함께 구체적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놀이와 승전놀음 시작 부분이다. 놀이 참여자들의 면면이 흥미롭다. 소년 협객에서부터 좋은 집안 자제, 시정 큰 상인, 별감, 포도군관, 정원사령, 나 장, 남북촌 한량들에 이르기까지 한양 각계각층의 인물들이 망라되어 있다. 그들의 접촉․교섭을 알 수 있으며, 문화적 통합과 공존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18~19세기 시적 공간으로서의 ‘한양’의 ‘시정’이 신분보다는 경제 활동에 의해 공간이 재편되고, 물질적 교류와 수평화의 확대가 이루어지면서, 문화 적 통합과 공존의 공간으로 형상화되고 있음이다.

3. 시적 공간으로서의 ‘한양’ 형상화 양상

‘한양’은 18~19세기 시가작품들에서 상층 사대부의 공간, 윤리적 유가적 공간을 노래하기도 하고, 하층 民의 공간, 세속적 욕망의 공간을 형상화하기 도 하지만 이 두 대립적 지향이 이 시기 새롭게 대두되는 공간인 여항-市井에 서 교류하고 통합하며 공존한다. 대상 작품들에 공통적으로 형상화되어 있는 현실적․구체적 공간으로서 ‘종로 저자거리’ ‘광통교’ ‘필운대’ ‘구리개’ 등, ‘동 일 공간’ 중심으로 그 시적 형상화 양상을 정리한 결과, (1) 동일 작가의 작품들에 유가적 격조와 여유를 지향하는 공간과 세속적 욕망의 공간을 형상화한 두 경향이 공존하기도 하고, (2) 신분상 상층인 전형적인 사대부 작가가 전형 적인 상층의 갈래인 漢詩에 시정의 세속적 인물과 세태를 생생하게 형상화함으로써 상하문화가 통합하는 문화의 수평적 전환이 가능해진 경우도 있었으며, (3) 한 작품 내부에 조선왕조 송축이나 도성으로서의 자긍심을 표출하는 전형적인 이념적 태도와 시정풍경의 세속적 인정세태가 공존하는 양상이 드러나기도 하였다. 市井은 물론 상업적 공간이다. 바로 이 조건이 새롭게 발달 된, 물류와 문화의 교류 혹은 교환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토대가 되며, 따라 서 公衆的 공간이며 현실적․구체적 공간이다. 시적 공간으로서 ‘한양’과 특히 ‘여항-시정’은 18~19세기에 교류의 공간, 화합의 공간, 공존과 상생의 공 간, 수평적 전환의 공간, 多衆의 공간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이는 한양을 형상화하는 태도와 시선을 분석하고,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18~19세기 시적 공간으로서 ‘한양’ 전반에 대한 고찰이라기보다는 그 일면에 대한 관심이 도달한 지점, 소통과 공존의 효과적 제시를 위한 실증적 분석이 도달한 지점이다.

1) 동일 작가의 경우

동일 작가의 작품에 유가적 격조와 여유를 지향하는 공간과 세속적 욕망의 공간을 형상화한 두 경향이 공존하는 경우이다. 여항인이었던 김수장은 ‘놀이 처’는 유가적 격조와 여유를 지향하는 공간으로 형상화하는 반면, ‘종로 저자 거리’는 서민적이고 세속적인 욕망의 공간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1) 놀이처-필운대

(가)

노래같이 좋고 좋은 것을 벗님네야 아돗던가

춘화유(春花柳) 하청풍(夏淸風)과 추월명(秋月明) 동설경(冬雪景)에 필운(弼雲) 소격(昭格) 탕춘대(蕩春臺)와 南北 漢江 절승처(絶勝處)에 주효난만(酒肴爛漫)한데 좋은 벗 갖은 혜적(嵇笛) 아리따운 아모가이 제일 명창들이 차 례로 앉아 엇걸어 불러내니 중대엽 삭대엽은 요순(堯舜) 우탕(禹湯) 문무(文武) 같고 후정화(後庭花) 낙희조(樂戱調)는 한당송(漢唐宋)이 되어 있고 소용(騷聳)이 편락(編樂)은 전국(戰國)이 되어 있어 도창검술(刀槍劍術)이 각자 등양(各自騰揚)하여 관현성(管絃聲)에 어리었다 공명과 부귀도 내 몰라라

남아의 호기를 나는 좋아 하노라

(김수장, 編數大葉, 甁歌 1092, 『역대시조전서』 6

 

(가)는 너무나 유명한 김수장의 사설시조로서 가곡을 즐기는 풍류 현장을 형상화하고 있다. 좋은 벗들과 아름다운 사계절에 절승처인 필운대 등을 찾아, 술과 안주, 온갖 악기를 가지고 명창들과 가곡 한바탕을 함께 하며 노는 공간을 노래한 것이다. 풍요롭고 여유 있는 느낌을 주지만, 곡조들의 비유적 제시는 매우 유가적이고 관념적이며 추상적이다.

작가인 김수장이 여항인임을 염두에 두고 사대부의 풍류를 모방한 작품으로 보면서, 조화와 균형미를 구현하려는 사대부와 달리 놀이에 몰입된 순간의 자족감과 흥이 전반을 지배하며, 전문예인으로서의 우월감도 비치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사대부의 전유물이었던 놀이판에 여항인 스스로 주재자 혹은 연행자로 참여하면서 자신의 존재 의의를 맘껏 과시하는 작품이 라는 평가가 있다. 계층과 문화적 공간 형상화의 변화 지점을 잘 지적하고 있지만, 여항인들도 향유 가능해진 풍류 현장은 오히려 전형적인 상층 사대부 의 공간 감각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전형적인 사용 어휘, 정형화된 율격과 잘 짜인 형식은 여항인으로서의 자의식과 조화를 이루어 보다 실감나는 흥취로 구현되고 있다.

(나) 또한 ‘필운대’를 중심으로 풍류행락을 그린 사설시조이다. 필운대는 당시 한양에서 가장 이름난 유흥지로 특히 ‘필운대’ 꽃구경은 한양의 명승 가운데 하나로 꼽힐 정도였다고 한다. 필운대 바위 앞에 서면 경복궁과 백악산 을 비롯한 서울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오는데, 바야흐로 삼월 청명절 ‘필운대’ 에서 내려다 본 서울의 모습은 좋은 집과 화려한 비단 장막에 봄의 정취가 물 씬 드리워져 있고, 公子王孫, 冶郞遊客, 騷人墨客들이 春興을 즐기는 장면 은 서울의 경제적 풍요를 배경으로 도시 유흥이 발달한 양상을 보여준다. 또한 여러 계층이 어우러지는 문화적 공간으로 형상화되어 있어, 이 시기 ‘놀 이처’에서 이루어지는 문화의 교류와 多衆의 참여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작품 또한 즐겁고 화평하며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상투적인 한자어와 생동감 없는 표현으로 인해 정서적 공감이 부족하다.

이 두 작품은 ‘놀이처’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知人들이 모여 술과 안주, 음 악과 풍류를 즐기는 양상을 표현하고 있다. 전형적인 놀이문화를 ‘한양’의 대 표적 절승처인 ‘필운대’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필운 대’는 ‘한양’에 실재하는 경험적 공간으로서 화자의 체험을 노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표현 언어나 시적 형상화에 있어 전형적인 상층의 미감이 드러난다. 사용 어휘가 개성적이기보다는 상투적이고, 세속적이기보다는 우아하며, 한자어가 많아 고풍스럽다. (가)는 김수장이라는 중인 가객, 이른바 여항인임을 알고 있고, (나)는 작자 미상임에도 불구하고 두 작품의 미감에는 큰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이들 사설시조는 한문어투 위주의 노랫말로 인해 격조 와 여유, 낙관적 풍류가 느껴진다. 그러나 사용 어휘가 묘사적이기보다는 설명적이고 추상적이어서 구체적이고 생동감이 있다거나, 어느 하루 작가가 느 꼈던 봄날의 흥취를 직접적으로 공감하기는 어렵다.

다만 (가)의 초장 “노래같이 좋고 좋은 것을 벗님네야 아돗던가”와 종장 “남아의 호기를 나는 좋아 하노라”의 순 우리말 어투는 놀이를 즐기는 순간의 흥 취가 구체적이고 생동감 있게 표현되고 있다. 여항인으로서 느끼는 감흥이 보 다 솔직하고 적극적으로 형상화되어 있어 돋보인다. 김수장에게서 상층에서 보던 풍류와 여항인으로서의 자의식이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 사설시조들은 절제와 압축, 질서를 이상으로 하는 시조 본연의 형상화 방식을 내면화하면서, 조선 후기 대두되는 장황한 묘사와 나열을 수용하 여 ‘한양’ ‘놀이처’를 형상화함으로써 기존의 질서와 새로운 변화를 아우르는 문학적 통합을 이루고 있다.

(2) 종로 저자 거리

서방님 병들어 두고 쓸 것 없어 鐘樓 저자 달래 팔아

배사고 감사고 유자 사고 석류 샀다 아차아차 잊었고 五花糖을 잊어버렸고자 수박에 술 꽂아놓고 한숨 겨워하노라

(김수장, 海周 640, 『역대시조전서』 15

서방님이 병이 들었는데 먹일 것이 없어 종루 저자에 가서 달래(다리/머리카락)을 팔아, 배와 감, 유자와 석류, 수박은 샀는데 깜빡 잊고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중국 사탕인 五花糖을 잊어버렸다고 탄식하는 여성의 모습이 형상화되어 있다. 가난 속에서도 병든 남편을 돌보는 아내의 애정이 조금은 해학적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삶의 애환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김수장이라는 여항시인이 하층여성의 목소리로 노래하고 있는 이 작품에 서는 ‘종루 저자’라는 시정 공간이 온갖 과일(배와 감, 유자와 석류, 그리고 수박) 뿐 아니라 중국 사탕인 五花糖까지 구매 가능한 상업적 공간으로서, 머리카락을 팔아야 하는 가난한 아낙네지만 사랑하는 서방님을 위해 온갖 먹을거리를 마련할 수 있는, 서민의 욕구와 필요까지 충족시켜 주는 접근 용이 한 공간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돈’만 있다면 원하는 상품을, 외국 물화까지도 구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한양’의 ‘저자 거리’인 것이다.

이 시조의 시적 공간은 상거래가 활발한 상업적 공간이면서도, 머리카락까지 팔아서 마련한 물품이 생필품인 쌀이나 땔감이 아닌, 온갖 과일과 사탕이 라는 사실은 시정 여인과 병든 남편의 먹을거리에 대한 소박한 욕망이 표출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시조에서 보다 강조되어야 하는 것은 병들어 누워있는 서방님을 위해 머리털까지 팔아 봉양하는 여인의 마음, 그 변치 않는 애정과 志節이다. 그러니까 김수장은 시정의 풍경을 노래하면서도 변치 않는 여심을 형상화함으로써 온갖 물화로 가득 찬 공간에서도 빛을 발하는 미덕을 통합․표출하고 있다. 서민적 순박성과 인정세태의 모습이 짧은 시 속 에 잘 드러나 있다.

작가는 이 공간을 형상화하는데 구어체에 가까운 일상적 어휘를 사용하여 구체적이고 생동감 있는 공감을 이끌어낸다. 특히 온갖 과일의 열거와 ‘아차 아차’와 같은 의성어는 돈을 마련하느라, 또한 여러 물화에 정신이 팔려 잊어버린 오화당 때문에 한숨 겨워하는 시정 여인의 마음을 보다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순 우리말 어투로 노래함으로써 정감적 호소력이 강화되는 것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김수장이 전아하고 상투적인 한문투의 시조 뿐 아니라 서민적이고 구체적이며 생활적인 국문투 시조도 창작하였음을 확인하였다. 여 항인이었던 김수장은 ‘놀이처’를 형상화할 때는 유가적 격조와 여유를 지향하는 공간으로, ‘종로 저자거리’는 서민적 요구를 충족시켜 주는 공간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는 앞에서 언급하였던 유가적 격조와 여유를 지향하는 공간과 서민적이고 세속적인 욕망의 공간을 형상화한 두 경향의 공존을 의미하는 바, 여항인의 상층문화와 하층문화의 교류․화합의 실증적 사례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사대부․중인들의 놀이처인 시적 공간과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문화를 형상화할 때는 한문투, 전형적인 표현들, 생동감보다는 익숙한 어휘와 표현을 나열하는 방식으로 선험적 공간으로 형상화하고 있다면, 종로 저자거리 를 시적 공간으로 하는 작품에서는 생활언어와 표현을 통해 ‘한양’이라는 공간 을 구체화하면서 리얼한 경험적 공간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한양가>에도 ‘오화당’ 부분이 있다.

<한양가>에서는 광통교 육의전 중의 하나인 청포전(국내외 여러 물품, 바 늘․비단․방석․고약․모자․중국산 사탕까지 파는 청포전)에서 팔고 있는 당물화를 열거하는 중에 ‘오화당’이 언급되고 있다. 청포전에는 조선 각처 외에도 청과 일본에서 들어오는 다양한 수입물화가 나열되고 있어 이 시기 한 양의 상업적 풍성함과 활성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웬만한 점포에서는 중 국산 수입물품이나 사치품을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앞 시조와 연결지어 생각할 때, 광통교 저자거리는 ‘돈’만 마련된다면 계층에 상관없이 수입물 품까지 구입 가능한 공간, 수평적 공간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2) 사대부 작가와 세속의 인정세태

신분상 상층인 전형적인 사대부 작가가 전형적인 상층의 갈래인 漢詩에 시 정의 세속적 인물과 세태를 생생하게 형상화함으로써 상하문화가 융합하는 문화의 수평적 전환을 보여주는 경우를 살펴본다. 강이천의 <한경사>에서 확 인할 수 있다.

<한경사>의 첫 번째 작품을 살펴본다.

사방으로 통한 여러 갈래 길은 서소문과 접하여 높다란 종각 아래로 사람들 구름처럼 많이 모여드네 이층누각에는 한낮에 발을 드리웠으니

배오개 남쪽 주변은 한바탕 시끄럽다네

종로 시정의 시적 공간이 형상화되어 있다. 서소문과 연결되는 사통팔달한공간, 높은 종각 아래로 구름처럼 모여드는 사람들, 발을 드리운 한낮의 이층 누각, 배오개 남쪽 시장 주변의 시끌벅적함이 생동감 있게 사실적으로 형상화 되어 있다.

종로 시정을 중심으로 약동하는 서민들의 발랄한 모습을 보여준다. 제1구 는 종로의 사거리가 이어져 서소문과 연접해 있는 장면으로, 대체로 장보러 가는 사람은 새벽에는 梨峴과 昭義門 밖으로 모이고 점심때는 종가로 모인 다고 한다. ‘종각’이라는 공간과 ‘배오개[梨峴]’ 남쪽 주변이라는 구체적 시 적 공간이 상업적 교류가 활발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공간으로 형상화됨으로써 시정의 번성함을 담아내고 있다.

강철같은 발톱, 멋진 닭벼슬에는 돈을 아끼지 않으니 광통천으로 흔히들 닭을 사러 간다네

무늬를 탐냄도 우는 소리를 탐냄도 아니니

이웃 동네와 내기하여 완벽하게 이기기 위해서라네

‘광통교’라는 시적 공간에서 싸움닭을 고르는 상황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 시를 통해 ‘광통교’가 닭을 파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서민들이 시정에서 닭싸움으로 하는 내기를 즐겼고, 따라서 내기 닭싸 움이 성행했음도 알 수 있다.

강철 같은 발톱과 족두리처럼 아름다운 벼슬을 가진 싸움닭 형용은 매우 구체적이고 사실적이어서 눈에 보이는 듯하다. 그래서 돈을 아끼지 않고 살 수 밖에 없는 서민적 욕망이 실감나게 다가온다. 문채나는 닭이나 잘 우는 닭도 탐내지 않고 내기싸움에서 완승할 놈을 고른다는 표현에서는 서민들의 세속적 승부욕과 활력이 생생하게 전해 온다.

닭싸움이라는 소재, 싸움에 강한 닭의 외형 묘사 그리고 이웃 동네와의 내 기 등, 서민적 놀이의 한 형태가 ‘광통교’라는 구체적 공간에서 치러지며, 유명하다는 내용을 통해 경험적 공간, 세속적 욕망의 공간으로서의 ‘광통교’가 실감나게 다가온다.

신령한 약초로 약을 잘 지으니

‘구리개’를 지날 때 약 향내 풍기는구나 주인이 희귀한 약재 쌓아 놓음을 자랑하고

시골선비 처음 와 신기한 처방이라 좋아한다네

이번에는 ‘구리개’라는 시적 공간을 살펴본다. 약 파는 곳으로 유명한 ‘구리 개’는 지금의 을지로라고 한다. 신령스런 풀, 신이한 뿌리로 약을 잘 짓는다고 알려진 곳, 그래서 지날 때마다 약 향기가 느껴지는 곳, 시골 남쪽에서 온 어수룩한 선비에게 희귀한 약재를 자랑하며 파는 주인, 신기한 처방이라 좋아하는 선비가 눈에 보이는 듯하다. 요즘에도 시골과 서울의 문화적 격차, 특히 질병 치료의 수준 차이는 많은 에피소드를 양산하는 바, 18세기 ‘구리개’를 중심으로 형상화된 시정의 삽화는 공감과 함께 재미있고 실감나게 다가온다. 종래의 한시에서는 비속한 것으로 치부하여 도외시되었던 시정의 일상사, 도시인의 생활 정취를 청신한 감각과 생동․발랄한 운치로 표현하여 변화하는 당시의 인정세태를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 돋보인다.

신분상 상층인 전형적인 사대부이자 한양에서 나고 자란 강이천이 시정의 인정물태를 생생하게 형상화하는 하층문화에 대한 관심을 한시라고 하는 고전적 양식에 담아 표현하고 있음은 도시와 상업의 발달로 생겨난 시정의 유흥문화 공간을 중심으로, 서로 간에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그 간격이 허물어지고, 이에 따라 수직적 문화 질서가 수평적 질서로 재편되면서 상하 문화가 융합하는 문화의 수평적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강이천은 <한경사>에서 왕에서 노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을 담아내 고 있으며, 궁궐 행사에서부터 서민의 생활풍습까지 형상화하고 있는 바, 서 민은 물론 천민들의 이야기까지 시적 대상과 공간을 확대시킨 점은 그의 의식 의 개방성과 아울러 그가 인간성을 긍정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풍부한 내용과 참신한 소재로 ‘서민의 삶’을 생생하게 살려내어 자유로운 내용의 문학을 창출한 작가로 평가된다.

<한경사>에서는 ‘종각’과 ‘배오개’, ‘광통교’와 ‘구리개’ 등의 공간이 전형적인 民의 공간, 세속적 욕망의 공간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이는 새롭게 대두되는 공간인 市井에 대한 사대부, 강이천의 관심을 통해 상하의 문화가 융합하는 양상의 일면을 보여준다. 다시 말하면 ‘한양’과 ‘시정’이라는 공간의 변화가 강이천이라는 사대부의 인식과 재현의 변화를 추동한 것이다. 18~19세기 시적 공간으로서의 ‘한양’은 사회적 갈등을 드러내거나, 혁신을 주장하기보다는 교류의 공간인 시정의 활기와 낙관에 힘입어, 기존 사대부들의 이념적 가치와 현실적․세속적 민중의 가치가 조화를 이루어 상생하고 공존하며 통합하는 양상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3) 동일 작품의 경우

한 작품 내부에 이념적 유가적 공간과 세속적 욕망의 공간의 공존하는 경우이다. 조선왕조 송축이나 도성으로서의 자긍심을 표출하는 전형적인 이념적 태도와 시정풍경의 생기발랄한 통속성이 공존하는 양상이다. <성시전도 시>와 <한양가>가 그러하다. 이들은 18~19세기 ‘한양’을 보여주는 대표적 자 료들이며, ‘서울의 도시성과 관련된 시적 경향’을 보이는 작품들임을 기존 연 구에서 이미 인정하고 있다. 또한 ‘종로 저자거리’ ‘광통교’ ‘필운대’ ‘구리개’ 등 ‘동일 공간’이 형상화되어 있는 바, 18~19세기 시적 대상으로서 ‘한양’ 공간 의 교류와 공존을 잘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연구에 의하면 <성시전도시>는 그 생성의 시대적 배경에 18세기라 는 시대와 ‘한양’이라는 공간의 변화, 즉 상공업․시정문화 중심 시대의 도래, 정조가 선도했던 조선의 당대현실을 분석하는 기풍, 박제가로 대표되는 시정 문화를 선도했던 서울 도시 출신 북학파의 진보적․실용적 성향 등이 동시에 놓여 있다고 평가된다. 18세기까지 한양을 전면적으로 묘사하는 회화와 문학 작품, 그리고 인문지리서가 드물거나 거의 없었던 상황에서 당대 현실을 분석 하는 실학적 기풍과 더불어 정조라는 제왕에 의해 촉발된 <성시전도시>의 존재가 선구적이라는 점은 그 의미가 크다. 또한 응제시이기 때문에 성대한 왕도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주제적 특징과 접근 태도를 보이지만 동시에 번 화한 시정의 풍부한 물산과 활기찬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특히 박제가는 한양의 새로운 이미지를 잘 표현하였는데 시장의 풍물을 가장 많은 분량을 안배하여 묘사했고 전체의 반 이상을 시장과 거리에서 일어나는 일들 을 묘사하여 한양의 이미지를 재구했다는 점은 흥미롭다.

<성시전도시>는 <한양가> 출현으로 이어진다. <한양가>는 장편 풍물 가사로서, 조선 후기 가사의 변화 속에서, ‘한양’을 새롭게 노래한 선도적 작품이 며, 18~19세기 한양을 다층적으로, 생생하게, 수십 폭의 풍속화처럼 형상화 해 낸 최고의 작품이다. 또한 경험적 사실을 기록하는 사대부 가사로서 유기 적 완결미를 갖춘 짜임새 있는 작품이다.

<한양가>에는 일관되게 화평하면서 긍정적인 기조가 깔려 있는 바, 이는 국가와 고향에 대한 믿음과 자부심에 근거한 것이었다. 왕조 중심의 유가적 이념을 강조하고, 자신이 처한 현실을 긍정하며 따라서 현실에 기반한 발전과 영속을 기원한다는 점에서 체제 수호적이며 지배이념에 충실한 보수적인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상공업의 발달과 시정문화의 번성이라는 사회적 변화를 부정하는 입장에서가 아니라 이 또한 한양과 조선 번성의 대표 적 양상이라는 생각으로 수렴되면서 충돌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고 있다. 19세기 중엽의 조선은 전국적으로는 세도정치와 삼정의 문란, 민란 등 부 패와 무능과 혼란으로 망해가는 시기라고 역사는 말한다. 그러나 <성시전도시>나 <한양가>의 ‘한양’과 ‘시정’ 공간은 여유 있고 안정적이며 긍정적 공간, 활기차고 역동적이며 생기발랄한 생활공간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이는 18~19세기, 시적 공간으로서의 ‘한양’ 형상화 양상의 의미를 새롭게 접근해야 함을 시사한다.

(1) <성시전도시>의 경우

기존 연구에 의하면 <성시전도시>는 창작한 시인의 시선에 따라 장중함과 비속함의 상이한 창작 방향을 보인다고 한다. 應製詩이기 때문에 왕도의 번 성함과 아름다움을 찬미한다는 주제적 특성과 접근태도가 모든 작품에 공통적이기 하나, ① ‘한양’을 묘사하되 의고적인 태도로 고풍스럽고 장중한 음조로 노래하며, 풍속적 소재와 비속한 표현을 배제하고, 과장된 찬미의 태도를 보이는 작품도 있고, ② 묘사의 태도는 사실적이지만 풍속적 소재와 비속한 표현을 그다지 채택하지 않았고 典雅한 묘사를 견지하는 작품도 있으며, ③ 서울의 풍경을 사실적 구체적으로 묘사하려는 경향이 강한 부류의 작품도 있다는 것이다.

그대는 아는가, 한양의 궁궐 하늘 높이 솟은 것 사십리 層城으로 둘러친 곳

종묘와 사직단 좌우로 크게 서 있고 뒤에는 총총한 산, 앞에는 먼 강물 천지가 개벽된 듯 그 옛날 南平壤 옛터전에 새로운 국운 선왕으로부터였네 文明의 해와 달 동해에 가까운데

훌륭한 인걸들 때 만나 仙李를 保佑하네 六曹는 높다랗게 한길가에 늘어서고 七門은 우뚝 붉은 노을 속에 솟아 있네 주민은 五部가 통할하고

병정은 三營에서 관리하네 즐비한 4만 호 기와지붕

잔잔한 물결 속의 고기비늘 같구나

박제가의 작품으로 ‘한양’의 全景을 가장 잘 그려놓은 것으로 평가된다. ‘한 양’의 전경이 압축적․서정적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조선왕조 도성으로서의 자긍심을 표출하는 전형적인 이념적 태도가 표출되어 있으나, 마지막 구인 “잔잔한 물결 속의 고기비늘 같구나” 같은 표현에서는 비유의 참신성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전반적으로 ‘한양’이라는 왕도의 번성함과 아름다움을 찬미한 다는 주제적 특성과 접근태도를 보이는 전형성이 있다. 따라서 격조와 여유가 느껴지는 시적 공간으로서의 ‘한양’이다.

梨峴 鐘樓 七牌

이 곧 도성의 삼대 저자라

모든 匠人 居業하니 사람 몰려 혼잡하고 온갖 화물 이득 좇아 수레가 연이어 가네

에서는 梨峴․鐘樓․七牌 등 都城 내 ‘三大市’ 주변을 형상화하고 있다. 갖가지 수공업자들의 조업과 각종 상품들 및 행상의 집합소였고 시민의 일상적 구매장이었으며, 상인․수공업자 그리고 구매자인 시민들이 紛沓을 이루었던 공간을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사람의 어깨 서로 부딪히고” “각색 상품들 잇속 좇아 수레바퀴 연이어”지는 세속적 욕망의 공간, 동적인 공간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시정의 생기발랄한 통속성이 잘 드러나 있다. 상업의 발달과 활기찬 시정생활로 변화하는 ‘한양’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형상화되고 있다.

봉성 털모자와 연경 실이요 북관 삼베에 한산 모시라

쌀과 콩과 나락 서속에 피와 보리요 …… 포도와 대추 밤에 귤과 배와 감이라 갈라놓은 생선포에 꿰어놓은 꿩 포요

보기 좋게 들린 것은 조기 넙치 연어 상어라.…… 두부를 파는 상자 탑보다도 높고

외를 담은 망태기 그물 눈 성글다.

시정의 풍부한 물산이 매우 구체적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저잣거리에 쌓여 있는 온갖 상품들은 팔도에서부터 온 우리 것뿐 아니라 외국의 상품까지 망라 되어 있다. 보이는 물산 하나하나를 구체적․사실적으로 나열하고 있다. 상 자 탑보다 높은 두부와 그물 눈 성근 망태기에 담긴 외 부분은 시정 풍경이 눈에 보이는 듯 생생하다.

가련타! 꽃게 파는 인천 아낙네는 봉두난발 대광주리를 빗겨 안고 가련타! 숯 파는 思陵사람은

비쩍 마른 말 끌고 나뭇짐 지고 걷기에 지쳤구나 가련타! 광통교 색주가는

別字 쓴 등을 걸고 탁자를 늘어놓았네 가련타! 구리개 약 파는 늙은이는

망건쓰고 어슬렁어슬렁 주렴 안에 머무네

신관호의 이 시는 “가련타!”를 반복하면서 시정의 인간 군상들, 꽃게 파는 인천 아낙네와 숯 파는 思陵사람, 광통교 색주가와 구리개 약 파는 늙은이를 나열․형상화하고 있다. 시장을 무대로 살아가는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각 자 삶의 무게에 휘청대는 모습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세속적 욕망의 공간인 시장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한양’이 활기차고 생동 감 있는 긍정적인 공간으로만 형상화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힘겨운 생존의 공간으로서의 일면 또한 충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성시전도시>는 왕도의 번성함과 아름다움을 찬미한다는 주제적 특성과 접근태도의 공통성으로 인해 ‘한양’이라는 시적 공간을 도성으로서의 자긍심 을 표출하는 전형적인 이념적 태도로 형상화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한양의 지세와 연혁, 궁궐과 관아 같은 지배자의 공간보다는 주로 시장과 거리, 풍속과 인간의 공간인 시정에 시선을 집중하였고, 권위적인 한양보다는 활력 넘치는 시적 공간으로서의 ‘한양’, 백성과 민가에 더 관심을 두었다. 장중하고 고풍스런 분위기를 살리려는 시들과 달리 세속적 사회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생한 모습과 인정세태를 표현하였던 것이다.

<성시전도시>에서 드러나는 ‘한양’의 풍경과 이미지는 화려함이나 장중함, 궁궐과 관아, 산천과 저택의 웅장함만으로 형상화된 공간은 아니다. 시장과 거리의 수많은 민중이 살아가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풍경 또한 ‘한양’인 것이며, 이 두 공간의 공존과 통합이 18세기 시적 공간으로서의 ‘한양’임을 작가들이 인식하고 형상화한 것이다.

(2) <한양가>의 경우

<한양가> 또한 18~19세기 시적 공간으로서의 ‘한양’을 형상화하는 양상이 조선왕조 송축이나 도성으로서의 자긍심을 표출하는 전형적인 이념적 태도와 시정풍경의 인정세태, 생기발랄한 통속성이 공존하고 있다.

 

(가)와 (나)는 <한양가> 서사와 결사 부분이다. 한양과 조선의 역사와 군 왕을 예찬하고 국가의 영속을 기원하며, 조선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거듭 확인 하고 있다. 따라서 이념적․이상적 지향, 장중하고 엄숙한 분위기의 全景, 평면적 설명 위주의 표현과 관념적 명분에 의한 추상적인 주장, 향토애와 조 국애의 고취 등을 확인할 수 있으며, <한양가> 전반에 일관되게 깔려있는, 국 가와 고향에 대한 믿음과 자부심에 근거한, 즐겁고 화평하면서 긍정적인 태도 가 있다. 따라서 사용 어휘도 상투적이지만 우아하고, 한글 사용이면서도 한 자어가 많아 고풍스러우며, 따라서 장중함과 우아함을 그 특징으로 한다. 고급문화의 엄숙성과 진지성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한양가>의 ‘놀이처’, ‘필운대’ 부분을 살펴본다.

<한양가>의 ‘필운대’는 놀이처의 하나로 제시되어 있다. 25개 ‘놀이처’를 숨가쁘게 나열하고 있지만, 설명적이거나 묘사적인 표현이 전혀 없다. 따라서 앞에서 언급한 김수장의 사설시조보다 더 평면적이다. “노리쳐 어드멘고 누 강산 죠흘시고”라는 선행 발화에 이어지는 구체적 절승처의 열거를 통해 길게 부연되고 확장되는 양상의 규칙성은 안정적 느낌을 주며, 열거가 주는 속도감 은 경쾌하지만, ‘놀이처’라는 시적 공간과 ‘죠흘시고’라는 영탄적 표현을 염두 에 둘 때, 즐겁고 화평하며 긍정적이어서 그 흥취는 김수장의 시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양가>의 ‘필운대’는 상층의 미감에 더 가까운 양상이다.

<한양가> ‘구리개’ 부분을 살펴본다.

 

 

 <한양가>에서는 ‘구리개’라는 시적 공간이 앞의 <한경사>와는 다른 양상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구리개 약방 거리와 그 모양을 소개하더니 이어지는, 백성들을 구제하여 오래 살게 하겠다는 다짐(“슈셰졔즁 리로다”), 또 약재들 의 연속적 나열 후에 이어지는 온갖 풀을 맛보게 하여 만민을 구제함은 염제 씨의 공덕이라는(“샹쵸 졔만민은 염뎨시 공덕일셰”) 상투적 예찬, 생산되는 물건이 많고 지대가 넓다고 예찬한 뒤에 이어지는 제왕의 도읍이라는 상투적 표현(물즁지 장시고 졔왕의 도읍일다)은 제왕적 권위의 상징에 대한 송축으로서 전형적인 유가적․이념적 지향이 담겨 있다. 오히려 사대부 작품이 며 한시인 <한경사>에 형상화된 ‘구리개’라는 시적 공간이 더 생동감 있고 리얼하며 구체적이다.

그러나 <한양가>에도 ‘시정’은 활기와 수많은 물화로 가득 찬 풍성한 소비공간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백각전과 큰광통교의 육주비전, 작은 칼과 패물을 파는 마루저자의 도자전, 소광통교(광교)의 그림가게, 각색 약을 파는 구 리개(을지로) 점방에 이르기까지 한양 시정의 각종 상점이, 물품 중심의 點景으로, 조목조목 구체적으로 나열 소개된다. 즉 “각션 다잇구나~/ 각실과 다 잇구나~/ 각마포 드러첫다~/ 각죠희 다잇구나~/ 가진당쇽 버러잇다~”와 같은 선행발화에 이어지는 구체적 물화의 열거를 통해 길게 부 연되고 확장되는 양상의 규칙성이 특징이며, 경쾌하고 생동감 넘치는 분위기 로 형상화된다. 또한 시정에서 장사하는 양상이 사실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손님 불러서 흥정을 붙이는 여립군과 가게 내고 물건을 파는 전시정의 차림 새, 사람 불러 흥정하는 모양이 ‘경박하기 측량없다’는 논평과 함께 구체적으 로 형상화되어 있다.

승전놀음의 주역이라 할 수 있는 별감과 기생 모습 부분은 그들의 맵시와 치장 묘사가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한 폭의 인물화를 보는 것 같다. 특히 기생치장 부분은 마치 신윤복의 <미인도>를 보는 듯 구체적이고 생생하다.

 

 <한양가>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변화해가는 조선 후기 사회를 반영하는 시적 공간으로서 ‘한양의 시정’ 풍경이다. 전체 764행(4음보 1행) 중, 504행이나 되는 부분이 설명적이고 관념적 내용보다는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묘사 로 형상화되어 있다. 따라서 장중․엄숙한 분위기보다는 경쾌하고 생동감 넘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으며, 이상적․이념적 지향보다는 현실적․세속적 지향에 경도되어 있다. 이는 물론 시정이라는 시적 공간의 특징에서 기인한 것이겠지만 구체적 생활언어와 생활도구, 일상적 사물, 번화한 모양새 등 을 다소 과장된 호흡으로 수다스럽게 열거함으로써 시정의 활기와 건강성이 돋보이며, 놀이문화의 흥겨움과 생생함,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묘사와 직접적 이고 설명적 요약의 솜씨 좋은 배치, 표현유형의 변주와 세련된 짜임새는 그 어느 곳보다도 풍물가사로서 <한양가>의 높은 가치를 입증한다 하겠다.

<한양가>에서 ‘한양’은 상층의 사대부의 공간, 윤리적 유가적 공간을 노래 하기도 하고, 하층의 民의 공간, 세속적 욕망의 공간을 형상화하기도 한다. 조선왕조 송축이나 도성으로서의 자긍심을 표출하는 전형적인 이념적 태도와 시정풍경의 인정세태와 생기발랄한 통속성이 공존하는 것이다.

4. 결론

이 논문은 ‘한양’이라는 공간을 형상화하는 18~19세기 작품들의 공통적 특징 중, 작품에 내재되어 있는 당대인들의 인식 변화에 관심을 두었다. 당시 시창작자들이 ‘한양’을 형상화하는 양상에 내재되어 있는 의식, 관점의 특징 과 변화를 살피는 데 주력하였다. 시조․가사․한시의 세 분야 작품을 대상으로 18~19세기 시적 공간으로서 ‘한양’에 드러나는 문학적 의미를 그 형상 화 양상에 중심을 두어 살핀 것이다.

특히 도시의 발달과 상업화에 따른 여항-시정 공간에 주목하여, 상층의 고급문화와 하층의 서민문화가 상호 교류하면서 공존․통합하는 양상을 시적 공간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18~19세기 시가작품들에서 ‘한양’은 상층의 사대부의 공간, 윤리적 유가적 공간을 노래하기도 하고, 하층의 民의 공간, 세속적 욕망의 공간을 형상화하기도 하지만 이 두 대립적 지향이 이 시기 새롭게 대두되는 공간인 市井에서 화합하고 상생하며 공존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그 양상은 (1) 동일 작가의 작품들에 유가적 격조와 여유를 지향하는 공간과 세속적 욕망의 공간을 형상화한 두 경향이 공존하기도 하고, (2) 신분 상 상층인 전형적인 사대부 작가가 전형적인 상층의 갈래인 漢詩에 시정의 세속적 인물과 세태를 생생하게 형상화함으로써 상하문화가 융합하는 문화의 수평적 전환을 보이기도 하며 (3) 한 작품 내부에 조선왕조 송축이나 도성으로서의 자긍심을 표출하는 전형적인 이념적 태도와 시정풍경의 생기발랄한 통속성이 공존하는 등이 그것이다. 이 두 지향의 노래가 함께 향유되고 ‘화합 적 화해로 공존’하는 양상이 18~19세기 한양을 노래하는 작품에 반영되어 있다. 市井은 물론 상업적 공간이다. 바로 이 조건이 새롭게 발달된, 물류와 문화의 교류 혹은 교환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토대가 되며, 따라서 公衆的 공간이며 현실적․구체적 공간이다. 시적 공간으로서 ‘시정’은 18~19세기에 교류의 공간, 화합의 공간, 공존과 상생의 공간, 수평적 전환의 공간, 多衆의 공간으로 형상화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18~19세기 시적 공간으로서의 ‘한양’은 사회적 갈등을 드러내거나, 혁신 을 주장하기보다는 교류의 공간인 시정의 활기와 낙관에 힘입어, 기존의 사대 부적 이념적 가치와 현실적․세속적 민중의 가치가 조화를 이루어 상생하고 공존하며 통합하는 양상으로 형상화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기존연구에서 18~19세기 ‘한양’을 보여주는 대표적 자료들, ‘서울의 도시성과 관련된 시적 경향’을 보이는 작품들 중심으로 접근하다 보니 자료적 참신성이 부족하다는 한계가 있으며, 분석 대상 자료가 충분하지 못하여 18~19세기 시적 공간으로서의 한양 전반에 대한 고찰에 이르지 못한 점이 있다. 차후 이 논의를 확장시켜 나감으로써 이 시기 시가의 시적 공간에 대한 고찰이 보다 통합적으로 이루어지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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