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카페에서 만난 사람들
철학카페에서 만난 사람들
  • 덕성여대 기자
  • 승인 2003.05.10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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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스-

  사회적 차원에서 작동하는 삶의 흐름은 우리의 일상생활을 틀지우는 본질적 시간이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가치의 창출과 함께 삶의 획기적 전환을 추동하는 혁명의 시간은 우리가 현재 어떤 삶을 살아가는가에 대해 분명한 해답을 제공한다. 20세기가 1917년 러시아에서 출발해, 68혁명과 89-90년 동유럽의 봉기들 속에서 사라져갔다면, 21세기는 이 혁명들에 고무받은 94년 사빠띠스따들의 반란으로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근대의 사상가들, 물질적 궁핍함, 전쟁, 노예상태, 그리고 무지와 미성숙이 인류의 삶에 덧씌운 치명적인 공포를 읽어낼 수 있는데, 이러한 공포를 벗어나려는 노력이 근대를 구성한 원동력이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는 그 공포들에서 자유로워졌을까? 멕시코 원주민들이 그렇듯 가난과 빈곤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전쟁의 포성 속에서 소리없이 죽어간 이라크 민중들은? 우리들 모두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자유의 억압은? 오히려 진실을 가리는 미디어들은? 풍요 속 빈곤, 평화를 향한 전쟁, 억압받는 자유, 허위 가득한 진실들. 사빠띠스따들은 바로 이 총체적 역설들에 맞서 싸운다. 그들은 ‘뒷걸음치는 근대성’, ‘야만의 세기’, ‘제 4차 세계대전’ 등으로 이 역설들을 표현한다.

  마르코스는 ‘제 3차 세계대전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다양한 싸움터에서 대결하는 양상’이었다면, ‘제 4차 대전은 거대한 금융 중심부들이 전세계를 무대’로 ‘지속적인 전투’를 진행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3차 대전이 남긴 ‘주인 없는 땅(동유럽)’, ‘거대한 노동력’들은 지배자들의 새로운 먹잇감으로 전락하며, 지배자들은 그것을 다시 전쟁을 통해 확보하려 한다. 결국 ‘세계화’는 금융시장의 논리가 전세계에 총체적으로 확장되는 과정으로, 그 결과 ‘라캉돈 정글’에 찾아든 것은 풍요와 평화가 아니라 죽음, 가난, 억압과 폭력이었다. 금융폭탄을 앞세운 거대기업과 자본의 이러한 공격에 맞서, 그들은 ‘야! 빠스따!(이제 그만)’라고 외치며 ‘전쟁과 반란’에의 길을 선택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사빠띠스따들은 전통적으로 혁명의 최종목표라 간주되던 ‘국가 권력’을 장악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국가 권력 장악’은 결국 ‘타인’을 강제력 속에 놓을 뿐, 그들이 끊임없이 외치는 ‘정의, 자유, 민주주의’, 즉 "각자에게 걸맞은 가치를 되돌려주는 것, 어떤 길이든 자신들이 원하는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것, 다채로운 생각들이 적절히 합의를 보는 것"과는 거리를 두기 때문이다.

  이처럼 완전한 자치와 자율을 길을 걷는 그들을,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모두에게는 모든 것을!’이라고 외치면서 타인에 대한 무한한 존중을 드러내는 그들을, 검은 가면 속에서 항상 여유 있는 미소를 잃지 않는 그들을, 경쟁자에 대한 학살과 폭력, 잔혹함을 서슴지 않던 20세기의 광기와 나란하게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생각에, 곧바로 ‘포스트모던’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비록 그들이 한편으로는 ‘근대화의 역설’에 맞서 싸우고 있고, ‘어떤 유토피아’를 향해 달려가지 않으며, 또한 ‘의식적으로 자신들의 텍스트와 일정한 거리’를 취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 그들은 구태의연할 정도로 ‘진실’에 집착하며, ‘헌법’에 보장된 ‘인간적 존엄성’과 ‘자유, 민주주의, 정의’를 외친다는 점에서, 그들의 투쟁을 특별한 다른 이유 없이 ‘포스트모던적 혁명’이라! 고 부르는 것은 문제가 있다. ‘포스트모던’이 단지 ‘모던(근대 또는 현대)’ 이후의 의미만을 갖는 것이라면, 그리고 죽음에 맞선 어떠한 반란적 행동도 용인하지 않는 것이라면, 연대와 만남을 통한 존엄성 회복을 거부하는 논리라면, 사빠띠스따들의 투쟁은 절대 ‘포스트모던’한 것이 아닐 테니까 말이다.

이승준 /프리랜서 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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