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학술] 남경대학살과 중일 관계 : 끝없는 평행선
[영화로 보는 학술] 남경대학살과 중일 관계 : 끝없는 평행선
  • 장영덕 베이징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 박사수료
  • 승인 2015.04.26 15: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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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영화 <존 라베 : 난징대학살 (John Labe, 2009)> 
  영화의 주인공 존 라베는 실존인물이다. 그는 독일 지멘스사 지사장이면서 중국에서 수력발전설비 운영을 하고 있다. 그러던 중 독일로 돌아오라는 말을 들은 존 라베는 중국인 직원들과 마지막 환송식을 한다. 그런데 일본이 중국으로 공습을 해오게 되고 이후 존 라베는 중국인들을 구하기 위해 국제위원회를 만드는 등의 활동을 하며 약 25만 명의 중국인을 구한다. 영화의 배경이 됐던 난징대학살은 어떤 사건일까?



 
비극의 시작
 
1937년 7월 7일, 베이징 루거우챠오에서 발생한 일본군의 총격사건으로 촉발된 중일전쟁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 회복되지 않는 커다란 흉터 하나를 남겨놓았다. 바로 ‘난징대학살’이다.

  중국인들은 이 사건을 ‘남경대도살’이라고 부른다. 일본군은 중일전쟁 발발 4개월 후인 11월에 상하이를 점령하고 12월 10일 국민당 정부의 수도인 난징으로 진격한다. 그리고 진격 3일만에 난징을 점령한다. 이것이 바로 비극의 시작이다.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은 국민당 포로를 비롯해 일반인에게도 무차별 학살과 강간을 자행했다. 12월 13일 자 도쿄니치니치 신문(현 마이니치 신문)에는 두 일본군 장교가 누가 먼저 100명의 목을 자르나 시합했다는 기사가 실렸는데 이는 당시의 참혹성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일본군의 만행은 6주에 걸쳐 자행됐고 이로 인해 희생된 중국인은 무려 30여만 명에 달한다.

  잊힌 비극
  중일전쟁이 끝나고 7년이 지난 1952년 6월, 중국과 일본은 제1차 민간무역협정을 체결한다. 전쟁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양국은 경제협력을 위한 공식관계에 합의한 것이다. 물론 냉전이라는 국제상황은 양국 간 교류를 크게 제한했다. 이 같은 제약에도 불구하고 1972년 9월 29일, 양국은 마침내 국교 정상화에 합의한다. 이후 1978년에는 <평화우호조약>을 체결하고 1979년에는 개혁개방을 막 시작한 중국에 대규모 차관을 제공하기도 했다. 1980년대에는 군사교류가 이뤄지기도 했다.   

  1970~80년대 양국관계가 회복 및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경제’라는 키워드가 공유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제는 1958년 대약진의 실패와 기근, 문화대혁명 등으로 파탄에 이르렀다. 마오쩌둥 사망 후 등장한 덩샤오핑은 경제발전만이 중국을 재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인식하고 1978년 개혁개방을 천명했다. 이로 인해 중국 정부는 ‘구동존이’를 기치로 갈등보다는 경제협력을 강조한다. 반면 일본은 한국전쟁을 통해 전후 추락했던 경제를 재건하면서 장기적인 경제발전을 위한 새로운 협력대상을 필요로 하게 된다. 첨예한 이념의 대립 상황에서도 많은 인구, 풍부한 자원 등을 보유한 중국은 일본의 장기적인 경제발전을 위해 반드시 협력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됐다. 1952년 체결된 민간무역협정 역시 중화민국과의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협정이었다. 심지어 1989년 천안문 사태 당시 서방국가들이 인권을 문제로 중국에 대한 경제 제재 조치를 취했을 때도 일본은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추진했다. 이처럼 양국관계는 경제발전이라는 공통된 목표가 있었기에 냉전의 구조적인 제약 속에서도 협력과 교류를 할 수 있었다.

  이같이 우호적인 흐름 가운데 난징대학살이라는 ‘과거’의 사건은 양국관계에서 잠시 흐릿해진다. 물론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역사교과서 왜곡 등의 문제가 제기되고 중국 외교부가 항의하는 등 마찰이 끊이지 않았지만 양국 정부는 크게 충돌하지 않았다. 역사 문제보다 경제 협력이 더 우선되던 시기에 민감한 사항은 우호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만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난징대학살을 다룬 루촨 감독의 영화 <난징! 난징!>의 포스터  제공/장영덕

  비극의 부활
  중국은 2010년 마침내 일본을 제치고 GDP 기준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이 됐다. 경제성장은 곧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 증대로 이어졌고 영향력이 커지면서 국제분쟁에 대한 목소리도 커졌다. 일본과의 마찰에서도 중국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중국은 2010년 발생한 댜오위다오(센카쿠열도) 분쟁에 대해 희토류 수출 금지 등의 강력한 조치를 통해 일본에 항의했고 결국 일본이 한 걸음 물러서며 사건은 일단락됐다. 힘이 없을 때 감정은 감정일 뿐이지만 힘이 생기면 감정은 행동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중국은 성공적인 경제발전을 바탕으로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자 한다. 그리고 역사 문제의 해결은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고 치욕을 씻기 위한 좋은 수단이 된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난징대학살은 민족주의를 고양하고 정치적 안정을 위한 수단으로 등장했다. 중국 정부는 난징대학살 77주기였던 2014년 12월 13일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했고 기념관을 비롯한 난징시 곳곳에 대대적인 추모행사를 개최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기념식에서 “역사를 잊는 것은 배신행위이고 범죄를 부정하는 것은 범죄를 되풀이하겠다는 것”이라며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일제의 침략을 미화하는 어떤 행위도 단호히 반대한다”며 역사 문제를 대하는 일본의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최근 일본의 우경화가 심상치 않다. 일본은 난징대학살을 ‘남경사건’으로 규정하는데 난징대학살 당시 희생된 중국인은 2만여 명에 불과하며 전후 처리는 도쿄 극동군사재판(1946)과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1952)을 통해 법적·외교적으로 모두 청산했다고 인식하고 있다. 일본의 일부 학자와 단체는 난징대학살이 날조된 사건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양국관계는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여러 가지 국제적, 국내적 배경이 존재하지만 기저에는 난징대학살로 대표되는 역사 문제, 그리고 역사를 마주하는 태도로 인한 갈등이 배태돼 있기 때문이다.
 

2012년 댜오위다오 분쟁 당시 필자가 촬영한 오토바이의 반일 문구 제공/장영덕

  비극의 단절을 위해
  최근 일본에서는 혐한, 혐중 정서가 확산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한국과 중국에서도 혐일 정서가 확산되고 있다. 2012년 댜오위다오 분쟁 때에는 일본 상품 불매운동을 비롯해 일부 과격한 사람들이 일본산 자동차를 소유한 중국인을 폭행하거나 기물을 파손하는 등의 사건도 발생했다. 양국 정부는 국가 이익과 정치적 목적을 위해 역사 문제를 이용한다. 문제는 역사 문제에 대한 정부 간 비판과 갈등이 일반 대중에게 영향을 미쳐 잘못된 민족주의를 부추긴다는 점이다. 2014년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중국인의 약 86%, 일본인의 약 93%가 서로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응답했다. 이 같은 심리적 거리는 정말 좁힐 수 없는 걸까?

  2015년 3월 12일 자 중국신문망에 따르면 일본의 민간단체인 ‘무라야마 담화 계승·발전모임’ 대표단은 기념관을 찾아 “참담함을 느낀다”고 밝혔다. 비록 작은 민간단체의 사적인 방문이었지만 현재 중일 관계에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정부가 할 수 없다면 민간 차원에서 화해를 위한 움직임이 활발해야 한다. ‘외교’란 본래 ‘밖으로 사귄다’라는 뜻이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다면 역사적 비극의 유산을 후대에 물려주지 않을 수 있다. 필자를 포함하여 젊은 사람들이 화해라는 작지만 강한 흐름에 앞장서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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