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어져야 할 이름, 비정규직
없어져야 할 이름, 비정규직
  • 제 114회 노동절 대학
  • 승인 2004.05.10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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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30일 중앙대학교 노천극장에서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주최한 ‘430 노동자결의대회’가 열렸다. 이 날 행사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한 목소리로 비정규직 차별을 없애자고 외쳤다. 다음날인 5월 1일 노동절대회에서도 비정규직 문제해결을 위한 노동자들의 의지를 다졌다. 430노동자결의대회와 노동절대회에 참가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그들이 어떻게 차별받고, 차별에 맞서 어떻게 저항하고 있는지 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나도 비정규직 노동자가 될 수 있다
 근로복지 공단의 20대 비정규직 노동자 주은선씨. 430노동자결의대회에서 만난 이 젊은 노동자는 교수님의 추천으로 입사하게 됐지만 비정규직자리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규직으로의 이동이 가능한 시험이 1년에 한번씩 주어지기 때문에,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일한지 2년 사이 1번의 시험이 있었지만 비정규직 900명중 10명에서 20명만이 정규직이 될 수 있었을 뿐이다. 주은선씨는 “거의 기회가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주은선씨는 “누구든 처음 입사할 때 비정규직으로 입사할 생각은 하지 않는 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신자유주의가 모든 노동자에게 부당하고 사업자에게 유리한 것임을 알고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무시하지 말라. 우리도 노동자다!
 우리는 병원 내에서 보호자들이 수행하기에 힘이 든 병수발을 담당하고 환자들의 회복을 위해 힘쓰는 사람들을 일컬어 ‘간병인’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들은 특수 고용형태의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엄연히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병원 내에서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로서 당연한 그들의 권리와 최저 임금 보장 등의 목소리들은 ‘너희가 무슨 노동자냐’며 무시당하기 일쑤다. 430노동자결의대회에 참가한 정금자(서울대병원 지부장) 간병인은 병원측의 억압과 차별에 대해 이야기했다.
 서울대 병원은 불법으로 근로자를 파견하는 업체를 통해 간병인을 고용해 이들의 입지를 더욱 좁아지게 됐고, 노동조합(노조)활동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노조의 투쟁으로 서울대병원은 무료소개소와 간병인 노조활동을 인정한다는 발표를 했고, 간병인들은 약 8개월간의 투쟁을 끝내고 그들을 원하는 환자들 곁으로 돌아갔다. 그렇지만 이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병원측에서는 정기적으로 간병인에 대한 평가서를 제출하게 하고, 제출된 평가서를 바탕으로 간병인과 1년마다 재계약을 한다. 간병인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평가서지만, 간병을 직접 받고 있는 환자가 아닌 수간호사가 작성하도록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금자 간병인은 “표면적으로는 나타나지 않으나 간병인들에 대한 간호과의 탄압과 소외 등은 여전히 우리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고 말한다.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간병인들은 제대로 된 노조활동을 펼치기 힘들 뿐더러, 간호사들의 눈치까지 살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간병인들 대부분은 5·60대 여성들이다. 그녀들에게 다른 직장을 찾기란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아야 하는 기분일 것이다. 정금자 지부장은 “마치 살얼음을 딛고 있는 것 같다. 언제 직장을 잃을지 모르는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며 한숨을 토했지만 “이 모든 것들이 해결될 때까지 싸울 수밖에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정규직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은 비정규직
 114주년 노동절 대회에서 ‘학습지교사 정규화’를 외치는 재능교육 박종기씨는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학습지 선생님의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는 99년 12월부터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를 시작해 올해로 5년이 넘어간다. 하지만 비정규직이라는 죄(?)로 4대 보험을 적용 받을 수 없을 뿐 아니라 퇴직금 역시 받지 못하는 처지다. 또한 1년마다 실시되는 구조조정을 겪기 때문에 그의 고용상태도 불안하기만 한다.
 이렇게 학습지 교사가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박종기씨는 “현행 법은 학습지교사를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고 ‘특수고용직’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며 “근로기준법을 적용 받지 못해 저임금의 임금과  부당해고는 상상 밖의 수준”이라고 전했다.
 따라서 비정규직 학습지 교사의 정규직쟁취에 대한 바람은 누구보다 크다. 그렇기 때문에 전국 10만여명의 학습지 교사들은 노조를 결성해 근로조건 개선을 비롯한 정규직 쟁취를 위한 투쟁을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다.
 그러나 노조활동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그 중 가장 큰 어려움은 부당해고로 인해 한 해 30%이상의 조합원이 바뀌는 현실과 아직 자신을 노동자라고 인식하는 학습지 교사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박종기씨는 “법적으로 학습지교사가 노동자로 보장받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며 “민주노동당이 국회로 진출한 17대 국회에서는 학습지교사의 정규직화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메이데이 유래
 역사연구소가 집필한 「메이데이 100년의 역사」(서해문집, 2004)는 메이데이를 이렇게 회상하고 있다. ‘한쪽에는 100달러짜리 지폐로 담배를 말아 피우는 사람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7~8달러의 주급으로 목숨을 부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개판이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개들의 세계에서는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세상의 변화를 위해 미국 노동총연맹은 시카고를 중심으로 하루 8시간의 노동조건을 위해서 1886년 5월 1일 총파업에 돌입했다. 공장의 기계소리, 망치소리가 멈추었고, 공장굴뚝에서 솟아오르던 연기도 보이지 않았다. 시위가 고조되는 과정에서 경찰의 발포로 노동자가 사망하게 되자, 항의 집회가 헤이마케트 광장에서 개최되었다. 이 사건으로 경찰과 시위군중이 충돌하여 사상자가 생겼다. 하지만 그것으로 노동자의 외침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마침내 1889년 7월 14일 세계 여러 나라 노동운동의 지도자들이 모인 제2 인터내셔널 창립대회에서 8시간 노동쟁취를 위해 투쟁했던 미국 노동자의 투쟁을 전세계로 확산시키기 위해 5월 1일을 세계노동절로 정하고 1890년 5월 1일을 기점으로 전세계 여러 도시에서 8시간 노동의 확립을 요구하는 국제적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이것이 바로 메이데이(노동절)의 유래이다. 메이데이는 18세기 후반 이래로 노동자들이 스스로 단결 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역사적 진보의 주체로 나설 것임을 확인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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