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90
응답하라 1990
  • 정예은 기자
  • 승인 2017.11.06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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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년이 되면 모든 1990년대(이하 90년대) 생은 성인이 된다. 그렇게나 어려 보이던 1999년생까지도 마냥 해맑은 아이였던 시절을 뒤로 한 채 사회로 나간다. 대중문화의 황금기였던 9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냈던 현재의 기성세대는 사회인이 된지 오래다. 이들이 까마득한 시절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곳은 추억의 만화영화 노래를 들려주는 유튜브뿐이다.

  어린 아이였던, 젊은 세대의 혈기가 넘쳐흘렀던 그 때의 추억을 당신은 기억하고 있을까. 뒷산에 묻어놓은 투박한 타임머신과 함께 그 시절의 향수도 고이 덮어놓은 것은 아닐까. 세기가 바뀌고 시간이 지나 기억 저 편으로 사라진 당신의 과거를 소환해본다.




  동심을 떠올리다
  우리는 같은 시대에 태어나 같은 문화 아래 하나가 됐다. 놀이터, 텀블링장, 문방구, 오락실 등 모든 곳에서 매일같이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냈다. 내가 좋아했던 장난감은 너도 좋아하는 장난감이었다. 내가 겪었던 일은 너도 겪어본 일이었다. 우리는 일상을 공유하며 자라왔다.

  선창균(26. 남) 씨(이하 선 씨)도 그랬다. “예전에는 문방구에서 유행하는 장난감이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었어요. 미니카가 인기 있을 때는 문방구에 미니카 경기장이 설치됐고, 탑블레이드가 유행하면 탑블레이드 경기장이 생겼죠. 당시 남자아이들이 갖고 놀았던 것은 다 좋아했던 것 같아요.”

  선 씨는 당시에 한창 인기였던 ‘종이 뽑기’에 대해 말했다. “당시 문방구에서는 100원을 내고 종이 뽑기를 할 수 있었어요. 종이 뽑기를 하다가 1등에 당첨되면 상품으로 고급 초콜릿 세트를 받을 수 있었죠. 1등에 당첨될 확률은 낮았기 때문에 저는 몇날 며칠 다른 아이들이 종이 뽑기를 하는 것을 구경만 했어요. 그러다가 뽑을 수 있는 종이가 세 개밖에 안 남았는데도 1등에 당첨된 사람이 없어서 ‘남아있는 종이 세 개를 다 뽑으면 1등에 무조건 당첨된다’라고 생각해 종이 세 개를 다 뽑았죠. 그런데 1등에 당첨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문방구 사장님께 이에 대해 항의했더니 사장님께서 미안하다고 사과하시면서 고급 초콜릿 세트를 주셨던 기억이 나네요.”

  김혜화(24. 여) 씨(이하 김 씨)도 어린 시절에 겪었던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저는 아이셔나 발바닥 사탕, 맥주 사탕 같은 불량식품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불량식품을 어떻게든 먹으려고 부족한 용돈에서 교통비를 아껴 불량식품을 사 먹었어요. 물론 집까지는 걸어서 갔죠.”

  김 씨는 불량식품 중에서도 달고나를 가장 좋아했다고 말했다. “일단 달고나는 맛있었어요. 그리고 바늘로 달고나의 모양에 맞춰 이를 자르면 달고나 하나를 더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이에 도전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켰죠. 당시에 달고나를 모양에 맞춰 잘 자르는 어른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그의 주변을 빙 둘러싸서 그 사람이 달고나를 자르고 있는 모습을 열심히 구경하기도 했어요. 또 한번은 집에서 달고나를 먹고 싶어서 국자로 달고나를 만들어본 적이 있는데, 설탕이 다 타버려서 탄 맛만 나더라고요.”

  이어 김 씨는 슬러시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슬러시도 우리들 사이에서 인기가 정말 많았어요. 슬러시를 사서 먹으면 친구들이 ‘한 입만, 한 입만’이라고 해서 몇몇 아이들은 다른 친구들이 이를 먹지 못하도록 슬러시에 침을 퉤퉤 뱉고는 했죠. 그걸 본 어떤 아이는 ‘그래도 줘’라고 말하기도 했고, 또 다른 아이는 ‘안 돼. 혈액형이 다른 사람의 침이 섞인 거 먹으면 죽어’라고 말했어요. 그 와중에 AB형인 아이는 자신은 A랑 B를 둘 다 갖고 있으니까 A형과 B형인 사람의 침이 섞인 걸 먹어도 안 죽는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어린이는 어른이 됐다
  90년대 생은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시절을 지나 이제는 대학생이 됐고 더 이상 청소년이 아닌 ‘젊은 세대’로서 목소리를 내야하는 ‘어른’이 됐다. 스무 살, 듣기만 해도 설레는 그 나이부터 우리는 사회의 논리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과제를 안았다. 우리는 어른의 이성으로 어린이의 감성을 지워나갔다. 하지만 기나긴 학창시절의 흔적을 모두 잊지는 못했다. 우리는 추억을 간직한 채 어설픈 사회인으로 남았다.

  김 씨는 초등학생 때 모았던 수집품이 아직 집에 있다고 말했다. “제가 어렸을 때 물결무늬가 있는 구슬이 인기가 많았어요. 구슬이 워낙 예뻐서 많이들 그 구슬을 모았었거든요. 그래서 우리 집에도 아직 그 구슬들이 남아 있어요. 또 초등학생 때 열심히 모아 놨던 1970년대 동전들도 있어요.”

  이어 김 씨는 사람들이 과거에 대한 그리움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SPA브랜드에서 ‘짱구 잠옷’을 출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두 매진됐어요. 또한 ‘세일러문 네일’도 유행하고 있고요. 옛날 애니메이션인 ‘세일러문’에 등장했던 마법소녀의 마술봉 컨셉으로 손톱을 장식하는 거죠. 사람들은 향수를 자극하는 굿즈가 나오면 이를 사고 싶어 해요. 다들 추억거리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거죠.”


  선 씨도 예전의 추억이 자주 떠오른다고 했다. “가수 세븐이 힐리스(바퀴 달린 운동화)를 타고 나와서 그 운동화가 유행이었죠. 그런데 최근에도 아이들이 너도나도 힐리스를 신고 다니더라고요. 그걸 보니 옛날 기억이 새록새록 났어요.”

  이어 선 씨는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 것 같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딱지치기를 하다가 딱지를 잃은 아이가 시비를 걸어서 싸우기도 했어요. 지나고 나면 별 것 아닌 일로 싸웠죠. 또 친구들과 같이 놀고 친해지기도 하면서 걱정이 없이 살았어요. 그 때는 ‘언제 어른이 될까’라는 막연한 생각만 들었고 군대도 안 갈 줄 알았는데 벌써 전역한 것도 모자라 예비군도 다녀왔어요. 지나고 보면 세월이 참 빨리 흘러갔다고 생각해요.”

  세기말에 청춘을 보냈다
  시간이 더 흘렀다. 우리는 하루하루 바쁘게 살았다. 대학생이었을 때에도, 결혼을 해 새 가정을 꾸려나가는 중에도 우리는 과거가 찰나처럼 지나갈 줄 몰랐다. 기억조차 희미해진 90년대, 20세기의 끝에서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

  이혜영(54. 여) 씨(이하 이 씨)는 90년대의 일상에 대해 회고했다. “90년대를 떠올리면 연탄과 관련된 기억이 많이 나요. 한번은 새로운 집으로 이사 간 첫날에 연탄가스를 마셔 의식을 잃고 말았어요. 마침 형부가 저에게 동치미 국물을 먹이고 의식을 차릴 수 있게 도와줘서 다행히 30분 만에 깨어날 수 있었어요. 90년대의 가정집에 있는 난방은 보통 연탄으로 작동됐기 때문에 당시에는 이런 일이 꽤 흔했어요.”

  이어 이 씨는 90년대 찜질방 문화에 대해서도 말했다. “90년대 초에 찜질방이 처음 생겨나면서 새로운 문화로 정착했어요. 그런데 그 때 찜질방에서는 한 쪽 구석에서 약장수들이 사람들을 모아놓고 사람들에게 휴지를 하나씩 나눠주며 약을 팔고는 했어요. 어르신들은 약장수가 나눠주는 휴지를 받으려고 약장수의 설명을 듣고 있다가 약은 안 사고 휴지만 받는 일이 허다했죠. 그러면 약장수가 사람들이 약을 안 산다고 눈치를 주며 구시렁거리곤 했는데, 그걸 본 후부터 저는 찜질방에 가지 않았어요. 하지만 찜질방에는 수면실과 식당, 헬스장 등 여러 시설이 있어서 친구들끼리 찜질방에서 만나 밤새고 노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어요. 부부싸움을 한 사람들도 찜질방에 자주 왔었고요.”


  나금숙(55. 여) 씨는 당시 드라마들의 영향력이 강했다고 말했다. “90년대에는 드라마의 위력이 지금보다 대단했어요. 그 때 방영했던 일일 드라마 <첫사랑>은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는 드라마 최고 시청률을 세웠고, <모래시계>, <애인> 등 다른 유명한 드라마들도 많았어요. <모래시계>가 방영되는 시간에는 범죄율이 확 줄어들 정도였으니 말 다한 셈이죠. 또 <애인>이 방영되면서 결혼한 사람들이 자신의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감정을 갖기 시작했어요. 말 그대로 애인을 만드는 게 유행이 됐던 거죠. 저는 개인적으로 황신혜가 예쁘다고 생각해 그 드라마를 몇 번 봤는데, 드라마의 중독성이 대단했던 기억이 나요.”

  과거로 현재를 보다
  우리는 매일 사회가 변화하는 것을 보며 그에 적응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사회가 변하는 만큼 과거의 흔적도 사라져간다. 하지만 향수는 계속 남아 과거를 추억하게 만든다.

  선 씨는 과거의 모습이 사라진 것에 유감을 표했다. “어렸을 때는 분식점에서 가격이 저렴하고 맛있는 피카츄 꼬치나 떡볶이를 많이 팔았었어요. 그런데 어른이 된 후에도 추억의 간식거리가 생각나서 예전에 분식점이 있던 곳을 찾아가보니 분식점 자체가 사라졌더라고요. 또 그때는 친구들과 문방구에 모여서 유행하는 장난감들을 갖고 놀면 시간이 가는 줄 몰랐어요.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학원을 다니느라 놀지 못하는 것 같아요. 예전과 다른 현재의 모습을 보면 안타깝고 씁쓸해요.”


  김 씨는 90년대를 새로운 시도가 많았던 시대라고 평했다. “이전까지는 터부시됐던 일본 문화가 90년대에 개방돼 일본 문화의 영향을 받은 한국 문화에서 과도기적 성격이 나타났다고 생각해요. 연예계에서 서태지처럼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들도 많이 등장했고요. 90년대는 도전 정신이 살아있었던 시대라고 생각해요.”

  이어 김 씨는 현재의 문화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예전에는 스마트폰이 없었기 때문에 사소한 것을 갖고 어떻게 잘 놀지 궁리했던 것 같아요. 90년대의 문화가 크리에이터들의 문화였다면 현재의 문화는 어댑터들의 문화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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