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지(이하 김): 화학과를 졸업하고 어떻게 프로모션기획 일을 하게 되셨나요?
그게 시작이었어요. 졸업 후 26살에 114에 전화를 해서 스포츠관련 업무를 하는 곳의 전화번호를 찾아가며 기업에 후원을 요청해 대학 응원단을 도와주는 회사를 차리게 되었지요. 그 후에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 프로모션을 배웠어요. 내가 힘과 경쟁력이 있어야 남을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김: 지금은 대학 때 생각했던 일을 하고 계신건가요?
이: 사실 프로모션 일을 배우고 난 후에 한동안은 프로모션에만 집중을
했었어요. 그래서 ‘대학 때 꿈꿨던 힘든 아이들을 돕는다. 아이들을 위한 일을 한다’라는 생각을 거의 못했었지요. 하지만 둘째 아이를 가지면서
갑자기 대학생 때의 마음이 생각났어요. 그래서 임신한 몸으로 2003년에 4월에 사단법인을 찾아가 허가를 받았지요. 그 이후로 서울문화재단과
연계해 응원단을 계속하기에 여건이 좋지 않은 중, 고등학생들에게 선진 응원도 알려주고, 해외 네트워크 사업을 통해 해외 초등학교 응원단과 국내
초등학교 간의 자매결연을 하기도 했어요.
김: 프로모션 일을 하면서 힘든 일도 많으셨을 것 같아요.
이: 물론 힘든 일도 있었죠. 회사가 부도가 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이 무너졌던
때도 있었어요. 정직원이 20명이 넘었던 회사의 규모를 대폭 축소시키고 회사를 하느냐 마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었지요. 하지만 그 때 제가
주최했던 행사들이 생각났어요.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기뻐했던 모습, 인터넷에 올려준 후기들이 떠오르더라고요. 방송의 경우에는 반응이 더
빨라요. 그때 그때 방송이 나가고 바로 체크할 수 있지요.
회사가 한 번 쓰러질 뻔하다 다시
살아난 것이 98년이에요. 그리고 98년을 기점으로 올해가 딱 10주년이고요. 주최했던 대회가 커지고 그 때 맺었던 인연들이 다 잘되고 있는
것을 보면 힘이 들어도 이 일을 선택하길 잘 했다 싶어요.
김: 프로모션 일에는 어떤 성격을 가진 학생이 어울리나요?
이: 활동적이고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이 많은 학생이 좋아요. 클라이언트의 직종이 자주
바뀌다보니 각 클라이언트에 맞는 대화가 필요하거든요. 제주소비자한마당이나 농림과학기술대전 같은 경우에는 완전 새로운 것을 배우는 느낌이었지요.
프로모션이 원체 그룹 별 기획이 많아서 나 혼자 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보다 커뮤니케이션을 중요시 여겨요. 그래서인지 사람을 만날 때는 주말도
따지지 않고 시간도 따지지 않지요.
저는 굉장히 내성적인 성격이었어요.
정말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딱 A형이요. 처음에 이 일에 뛰어들었을 때는 손에 식은땀이 줄줄 날 정도로 힘들었지요. 하지만 이 일을 하면서 많이
변화했어요. 원래 성격이 활동적이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너무 좌절하지 않아도 돼요.
김: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이: 인생은 꿈꾸는 자의 것이에요. 꿈꾸고 자신의 인생을 투자해야만 그 꿈이 현실이 되지요.
대학 때 전공 공부에만 매달리기 보다는 눈을 돌려 세상을 보며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세요. 젊은 날의 다양한 경험이 자신이 좋아하고 진정 원하는
활동을 할 때 도움이 된답니다. 대학이 졸업장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내가 학교에서 배운 것이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도록 열심히
참여하세요. 또 한 가지. 일을 하다 보니 ‘사람이 보물이다’라는 말이 정말 와 닿았어요. 지금 주변의 친구, 선배 모두를 소중히
여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