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2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JSA의 지하 벙커에서 젊은 장교 김훈이 죽었다. 사망 이후 2009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된 당국의 조사는 젊은 장교의 사망과 관련된 의혹을 해소하지 못한 채 마무리 됐다. 자식을 잃은 아버지(김척)는 11년 동안 매일같이 죽음의 흔적을 쫓았다. 아들의 시신, 사망현장, 혈흔, 무기를 바라보며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 속으로 자신을 몰아넣었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마음을 국가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이는 점점 줄었다.
그 즈음 김희철 감독은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김훈 중위의 의문사를 다룬 전작 <진실의 문>을 완성했지만 영화의 힘은 작았고 유족의 슬픔은 더욱 커져갔다. 감독 자신의 삶을 영위하며 10여년을 유족과 함께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사건의 무게가 감독을 짓눌렀고 달라지지 않는 현실에 몸부림치는 유족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적잖이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동일 사건을 다룬 <사랑할 수 없는 시간>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효과나 동기에 의문을 품는 이들이 많았다. 외면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감독의 성정을 사람들은 헤아리지 못했다.
영화는 죽어버린 14년 전의 기억을 불러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또 다른 죽음과 연결한다. <사랑할 수 없는 시간>은 김훈 중위가 어떻게 사망했는지 범인이 누구인지 밝히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 않다. 다만 그 의문을 다루는 우리의 태도, 누군가의 죽음을 대하는 사랑할 수 없는 시간을 사는 우리 모두의 태도. 그것이 더 중요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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